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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Jan 04. 2019

영화가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것

브런치 무비 패스 #07 - 영화 <레토>(2018)

호기심이란 관객과 영화 모두에게 중요한 감정이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라도 개인마다 발생하는 호기심의 종류도, 수도 다르다. 최근 나의 경우, <레토>는 비교적 다양한 호기심들을 고루 충족한 작품이었다.



영화를 위해 극장으로 향하게 하는 호기심

한국계 러시아인을 다룬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 배우 유태오가 나온다는 사실 등이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레토>를 씨네21의 기사로 처음 접했다. 단순한 영화 프리뷰가 아니었다. 감독인 키릴 셰레브렌니코프 감독이 가택 구금을 당하는 바람에 칸 영화제에 참석해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작품이 반정부 성향을 띠고 있어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영화와 나의 첫만남이었다. 이 정도면 ‘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개봉 두 달 전부터 <레토>를 기다렸다.



영화를 계속 보게 만드는 호기심

머리속에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그랬다. 젊은 여자들이 남자 화장실을 통해 공연장 내부로 몰래 진입한다. 그리고 공연 시작 직전 착석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앞에서 꽤나 신나는 록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관객들은 손발이 묶이기라도 한 듯 그저 어깨만 가볍게 들썩거린다. 아니나다를까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감시원들이 관객들 근처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후에도 빅토르가 온전히 자신의 곡을 무대에 올리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에피소드가 드문드문 등장한다. 이때 장애물은 동료 간 의견 차이기도 하지만, 공연장 운영 측의 만류이기도 하다. 주최 측은 결국 사회 풍자적·비판적 요소가 강한 빅토르의 가사들을 ‘코미디’라고 포장해 내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뿐만 아니라 <레토>에는 감독의 페르소나로 추정되는 인물 하나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매번 말한다. ‘이건 없었던 일이야.’ 바로 앞에는 저항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다. 정말 그것들이 없었던 일이라면, 일어날 수 없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일어났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까? 이 영화가 이토록 ‘금지된 순간들’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속 발견을 영화 밖으로까지 이끌어 내는 호기심

<레토>라는 영화의 제목이 궁금했다. 어설프게 나마 귀로 들리는 러시아어 발음과 한국어 자막을 연결해 유추했던 내용이 맞았다. 레토는 러시아어로 ‘여름’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이 흑백 톤으로 촬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것만 같았던 러시아 젊은이들의 한때를 한바탕 보고 나왔기에. 바로 납득되었다. 사운드트랙 역시 매력적이었다. 토킹 헤즈, 이기 팝, 블론디 등. 당대를 풍미했던 음악인 동시에 러시아에서는 ‘적국’이라는 표현으로 흔히 불렸던 미국 가수들의 음악이다. 저항정신을 끌어 올리는 음악에 도취한 젊은이들의 열기가 스크린 너머까지 전해졌다. 극장을 나와 가사를 음미하며 다시금 듣고 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숱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영화였다. 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그 호기심이 완벽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영화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당대의 무드를 진하게 남기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그것이 모두에게 와 닿는 방법일지는 미지수다. 한 편의 지독하게 강렬한 MTV 영상을 보고 나온 느낌이었다. 난해한데, 묘하게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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