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10 - 영화 <바이스>(2018)
'그는 몇 수 앞을 내다본 것일까.'
위 내레이션은 영화 <바이스>에서 조지 W. 부시(샘 록웰)에게 러닝메이트 자리를 제안받은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가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등장한다. 아마 저 질문은 감독 아담 맥케이가 <바이스>를 제작하는 내내 놓을 수 없는 숙제였을 것이다. 실제 딕 체니 부통령 시절, 9.11 테러를 전후로 한 사건들과 그의 행보가 열마만큼 연관되어 있는지, 관객은 물론 감독 역시 '추측'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딕 체니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예상하고 움직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초입에서 감독 스스로 그렇게 밝히지 않았는가. '우리는 X나 최선을 다했다'고.
<바이스> 외에도 수많은 영화가 권력을 손에 쥐고 흔드는 인물들을 그려왔다. 돌이켜보건대 해당 인물들에게서 권력욕이 촉발되는 지점은 극히 개인적이었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대의를 위해 혹은 악의를 갖고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바이스>의 딕 체니 역시 그러하다. 그는 예일대에 입학하지만 술에 빠져 제적을 당한다. 사고를 치기도 여러 번, 모범생인 여자친구 린(에이미 아담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수차례다. 결국 참다 못해 린은 체니에게 말한다.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군다면 이별을 고하겠노라고. 이에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짓던 체니는 대답한다. 다시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겠노라고.
적어도 <바이스>에서 딕 체니의 권력욕은 위 사건을 계기로 점화된다. 해당 사건은 숱한 책략과 탐색전으로 얽히고 섥히는 이후 전개에서도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발한다. 처음 제대로 된 전용 집무실이 생겼을 때 딕 체니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린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다. 마치 그 옛날의 약속을 지켰다고 선언하는 듯 하다. 부통령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불도 켜지 않은 텅 빈 방을 바라보며 그는, 집무실이 처음 생겼던 순간과 린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던 순간을 오버랩해 떠올린다. 결국 딕 체니는 약속을 지킨 신의의 사나이가 되었다. 이때 딕 체니를 소위 '악역'과도 같은 지위로 상정하고 영화를 봤을 관객은 무언가 어긋나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실제로 정치사에 불러일으킨 파장을 감안했을 때, 그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반문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필자가 그러했다.
하지만 극장을 나서는 순간, 필자는 제작진의 의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바이스>는 당초 딕 체니를 부정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 아니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을 때 감히 쉽게 추론할 수 없는 그의 내면에 무리한 주관을 부여하지 않고자 노력한 영화다. 이에 따라 영화 초반부에 등장한 '계기'를 지속적인 구심점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을 법한 계기. 그러나 그 계기가 이후의 행보를 옹호하는 데에 쓰이지 않기에 의미가 있다. 욕구의 성격이 변모하고 규모가 확대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약간의 추론에 사건에 대한 고증이 결합할 때 영화는 다큐가 아닌 서사로서 힘을 갖게 되었다.
<바이스>는 분명 정치사적 관점에서 되짚어볼 것이 많은 영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팩트를 나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되 과도하게 추론하지도 않는 것에 성공한 영화사적 사례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