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디 May 26. 2019

그는 정말 돈키호테를 죽인 장본인일까?

브런치 무비 패스 #11 -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2019)

'영향'이란 무엇일까. 사전에 등재돼 있는 의미로는 '어떤 사물의 효과나 작용이 다른 것에 미치는 일'이란다. 예컨대 A라는 사람의 단독적 행동이 그 자신에게만 특정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옆의 B에게도, 혹은 저 멀리 C에게도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이 파장을 소재로 하여 세상의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토비(애덤 드라이버)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광고 감독이다. 그는 스페인 현지에서 광고 하나를 촬영하게 된다. 이때 불후의 명작 <라만차 오브 돈키호테>가 테마로 활용된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시원치 않고, 풍차 세트는 자꾸 말썽을 부린다. 긴급 대책 회의에 들어갔을 때 토비는 일행 주위를 배회하던 남자 집시 하나가 팔고 있던 오래된 DVD 하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토비가 대학 시절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던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였다. 당시 실제 마을 주민들을 캐스팅해 <라만차 오브 돈키호테>의 스핀오프 작품을 촬영했던 토비는 무언가 떠오른 듯 오토바이를 몰고 그때 그 마을로 떠난다.



영화 사이트에서 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찾으면 장르에 'Adventure(모험)'라고 떡 하니 명시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스페인 그리고 상업 필름 촬영 현장으로부터 시작된 이 영화는 얼핏 보기에 모험적 요소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가 모험담이 될 수 있는 것은 토비가 자신의 졸업 작품에 주인공 돈키호테로 캐스팅했던 구두장이 노인(조나단 프라이스)을 다시 만나면서부터다. 노인은 영화 촬영이 끝난 이후 줄곧 자신이 돈키호테라고 믿고 있다. 그는 다시 만난 토비를 보고도 자신의 심복 '산초'가 아니냐며 반가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예측 불허한 모험의 행로에 토비를 동반한다.



아무리 대학생의 졸업 작품 정도라고 하지만, 영화 촬영은 분명 작은 마을의 큰 사건이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영화 촬영에 함께 했다. 좋은 기억들만 가득 안고 끝났다면 좋았을 사건이었으리라. 하지만 이후 마을의 분위기는 사뭇 암울해졌다. 돈키호테 역을 맡은 노인은 미쳐버렸다. 여주인공을 맡았던 안젤리카(조아나 리베이로)는 배우의 꿈을 꿨지만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토비에게 말한다. '네가 다녀간 뒤 많은 것이 바뀌었다'라고. 앞서 언급한 '영향'에 대한 고찰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마을이 침체기에 접어든 것을 토비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토비가 울며 겨자 먹기로 돈키호테의 위험한 모험을 따르며 목숨을 겨우 부지해 가는 것을, 잘못에 대한 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블랙 코미디의 모든 원인이 토비에게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극장을 나서며 위 질문들에 대한 나의 답은 '아니오'로 귀결됐다. 초반에는 분명, 커 가면서 속물이 되어 버렸고 주변을 살피는 데에 지독히 무관심했던 토비에게 가해지는 우스꽝스러운 벌 혹은 장난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의 초점은 '인과응보'가 아니다. 토비가 마을에 미친 '영향'은 결국 소재일 뿐이다. 영화는 토비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부조리와 불합리를 발견하게 한다. 살 곳을 잃은 체류자들은 저의와 무관하게 테러리스트로 규정됐다. 시골 마을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던 소녀는 불행해졌다. 가진 것이라곤 꿈 밖에 없었던 노인은 가진 자들 앞에서 한껏 조롱당한다.



토비가 떠났던 '과장된' 모험은 형벌이 아니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아이러니로 가득 찼는 지를 보여주는 은유이자 상징이었다. 결국 토비는,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지극히 정상이길 강요하는 미친 세상에 우린 미쳐야만 정상이 돼'라는 어느 노래 가사가 제시하는 풍경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론과 고증, 그 균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