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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Jun 19. 2019

끼어들 틈이 없는 걸

브런치 무비 패스 #12 - 영화 <갤버스턴>(2018)

엘르 패닝의 필모그래피는 단단하다. 어린 시절 보여준 아역과 단역 이미지에서 일찍이 벗어났다. <말레피센트>의 오로라 공주, <어바웃 레이>의 레이, <네온 데몬>의 제시, <우리의 20세기>의 줄리, <매혹당한 사람들>의 알리시아, <메리 셸리>의 셸리. 어느 하나 전형적인 캐릭터가 없다. 그녀의 선택에는 늘 ‘어떤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엘르 패닝이 나온 영화를 챙겨 본다. 영화를 고를 때 선택의 기준이 배우가 된다는 건 결국 신뢰와 관련된 사안이다.



엘르 패닝은 <갤버스턴>을 선택했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어리지만 빨리 커야만 했던 아이 ‘록키’를 연기한다. 의도치 않게 생사가 걸린 사건에 휘말린 록키는 동생 ‘티파니’를 데리고 현장에 함께 있던 남자 ‘로이’와 동행한다.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들 사이에 우정이 싹튼다.


라면, 좋았겠지만.


분명 위에 언급한대로 볼 수도 있었을 영화다. 실제로 작품의 초점을 ‘록키’에 맞추려고 했던 나의 시도다. 하지만 이 시도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영화가 철저히 벤 포스터의 ‘로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원톱 주연으로 내세우려고 했던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고독하고 위험한 남자의 표정이 점차 부드러워져 가는 과정, 하지만 평생의 낙인을 벗어날 수 없기에 더욱 강력해지는 딜레마, 따위의 것들은 영화로 만들기에 더없이 극적인 소재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서 영화 드라마 할 것 없이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봐온 터라, 한국 관객들에게 얼마나 신선한 이야기로 다가올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좀 더 여지가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철저히 로이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 있도록 빈틈 없이 짜여진 영화 속에서 나 같은 관객은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요 근래 다양한 작품을 접하면서 느낀 것은, 그 안의 다양한 캐릭터의 입장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는 것 역시 즐거운 감상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비단 비중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중은 물론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캐릭터의 특정 매력에 끌려 그들이 궁금해지는 건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비교적 짧게 등장하는 캐릭터로부터 주연급 출연진 이상의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알라딘>에서 알라딘에만 감정 이입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지니도 있고, 자스민도 있고, 자스민의 하녀 달리아도 있는걸. <기생충>에서 기우만 보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기택의 속내, 기정의 사정도 충분히 궁금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갤버스턴>의 록키는 사연 많은 캐릭터다. 하지만 그 사연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로이에 의해 잠시 구원 받을 뿐 모든 상황에서 피해자이자 객체였던 그녀다. 아니, 솔직히 로이가 록키에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건지 이젠 잘 모르겠다. 록키가 아니라 다른 그 누구였어도 서사 진행에 전혀 지장이 없었을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엘르 패닝의 필모그래피는 단단하다. 아직 그렇게 믿는다. 이제 겨우 한국 나이로 22살 밖에 되지 않은 배우다. 비중에 상관없이 그녀만의 매력을 보다 확실하게 살려줄 좋은 작품을 만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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