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퇴근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디 Oct 19. 2019

행복과 불행과 가을

2019년 10월 19일 토요일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몇 가지 꼽아본다.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음악들을 듣는 것이 좋다.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도 좋다. 찬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오히려 햇볕이 더 따스하게 느껴진다. 등등등.


하지만 가을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연말이 주는 분주함 탓일까, 시간이든 사람이든 떠나보낼 일이 많았던 탓일까. 겨울에 관해서는 기억하고 싶은 만큼 좋은 기억이 많지는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대와 부담에 치여 정신없이 봄을 보낸다. 여름밤의 달뜬 공기는 좋아하지만 인위적으로 흥겨운 노래를 틀어 놓고 휴양을 찬미하는 정서는 나와 영 맞지 않는다. 이렇게 숱한 시간을 거쳐 당도한 가을은 내게 마치 1년의 마지막 계절 같다. 꼭 오늘처럼, 휴일임에도 창문 틈 커튼 새로 희미하게 쏟아진 노란 햇살에 눈이 자연스레 떠져 차분한 마음으로 일기를 쓸 수 있는 계절이다.


일기를 쓰겠다고 결심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리저리 유영하는 생각들은 좀처럼 정리가 되질 않는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데까지 글을 써보려 결심한 것은 내 마음에서 좀 더 멀찍이 떨어져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상대보다 좀 더 슬픈 사람이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남들이 하지 않는 오만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어 슬펐다. 쉬운 예로, 웃긴 영화를 보아도 그 안에서조차 슬픈 포인트를 잡아내 그것에 하루 종일 빠져드는 사람이다. 오래 머물렀던 자리를 떠날 때는 물론이거니와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에도 떠나는 이보다 한없이 슬퍼한다.


하지만 근 몇 달 간은, 슬프지 않았다. 새로 시작한 일로 인해 내 감정을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좋은 환경과 좋은 사람들을 만난 영향이 컸다. 그것들은 내가 슬픈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잠을 잘 잤고, 아침을 개운하게 맞이했다. 머리도 아프지 않았다. 어딜 가나 차가운 무표정에 대해 한 소리씩 듣곤 했는데 오히려 나의 밝은 인사가 항상 고마웠다고 말하는 사람도 만났다.


그럼 마냥 행복해야 하는데, 무르익어가는 가을을 맞이한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나의 행복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어떡하지? 영원한 것은 없다. 누구보다 잘 안다. 세상 가장 세련된 줄로만 알았던 것도 한 철 유행이다.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친구들도 멀어졌다. 수도 없이 세웠던 결심은 마찬가지로 셀 수 없이 많은 순간 무너진다.


'불행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이 행복이 될 수 있을까?' 재작년 이맘때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다. 그때는 내가 억지로, 꾸역꾸역 불행한 생각을 멈춰야만 겨우 숨 쉴 수 있었기에, 그에 대한 조소처럼 떠올렸던 문장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문장의 역을 떠올린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건 불행이 일시적으로 멈춰졌기 때문 아닐까?' 지금의 날들이 지나 불행이 다시금 고개를 든다면 나는 그 순간들을 어떻게 버텨내야 할까. 가까이 있을지 멀리 있을지 조차 예측할 수 없는 그 미래를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스스로도 안타깝다.


하지만 마음을 다시 다 잡으려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니까. 열세 살의 나 그리고 스물다섯의 내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다 상상해본다. 길지 않았던 내 인생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들. 그곳에 머물러 있을 두 사람이 내게 이렇게 묻고 있다 생각하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행복해졌지? '


아직도 많이 남은 생각들을 여전히 정리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다. 매몰되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조화(調和)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