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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Oct 25. 2019

슬픔을 표출한다는 것

2019년 10월 25일 금요일 새벽 (1)

보통 특정 기간 동안 특정 주제에 대해 오래 생각을 하는 편이다. 주제는 처한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해왔다. 하지만 결국 그 생각들을 모아 보면 ‘태도’에 관한 것일 때가 많다. 특정적인 환경에서 내가 가져야 할 태도, 가져야 했으나 갖지 못한 태도. 그래서 정리해본다. 이번 주 태도에 관한 생각들.

   



이번 한 주 동안은 ‘슬픔을 표출하는 태도’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거의 떼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참 신기하고 낯선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내 기억 속의 어린 나는 늘 무언가 바라고 또 이루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느끼고 생각한 바를 바깥으로 표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기대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많은 사람이다. 많은 만큼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 크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기쁨을 나누면 그것이 두배가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는 어찌 변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슬픔을 나누면 그것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기쁨과 마찬가지로 두배 혹은 그 이상이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사는 건 고통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전쟁을 치른다. 내 옆의 누군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들어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새로운 걱정거리를 안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보통,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일 때가 많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정말 적은 확률일지라도 그 누군가는 내가 슬픔을 공유해주길 바라지 않았을까? 그때 내가 망설이지 않았다면 모든 게 조금씩은 달라졌을까? 나라고 모든 게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고, 슬픔 탓에 내 몸이 망가져 있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아채는 바보가 나라고 말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난 당신 생각만큼 결코 단단한 사람이 아니니, 나에게도 조금은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떼를 써볼 수도 있었을까? 혼자 우는 시간이 줄었을까? 그나마 글을 쓰면서 모든 감정을 삭히는 일도 줄었을까?


단단한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는 일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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