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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Oct 30. 2019

100% 알고 싶다

2019년 10월 30일 수요일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의 100%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예전에는 '온전한'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봐줄 수 있길 원했다. '나는 나인채로 존재할 뿐인데, 왜 그 누구도 있는 그대로 봐주질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나쁜 오해는 물론 좋은 오해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전자의 경우, 나의 가치를 절하하는 사람들이 미웠다.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되뇌며 무너지는 자존감을 겨우 일으켜 세웠다. 후자의 경우는 부담스러웠다. 나는 부족한 점이 아직 많은데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나쁜 오해보다는 좋은 오해가 당연히 좋았다. 그러나 어찌 됐든 나는 이것들에 '오해'라는 명칭을 붙여주었기에, 그마저 마냥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던 것은, 내가 나 스스로의 '온전한' 모습을 알고 있다는 지레짐작이 배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확신했다. 나조차 나의 100%를, 순수한 본질을 알지 못한다. 지금 당장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고민 끝에 이것저것 대답해볼 수는 있겠지만 자신하지 못할 것 같다. 거짓말하는 기분도 들 것 같다. 그래서 나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목조목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테다.

최근 힘든 일이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어려움 탓이었다. 원인을 찾으려 해 보면서 처음에는 합리화를 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아닐까? 순간 억울했지만 이윽고 다른 물음에까지 생각이 가 닿는다. 사실 그것이 오해가 아니라, 정작 나 자신은 발견하지 못한 내 진짜 모습이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은 모든 행동을 스스로 검열하게 만든다. 이런 행동을 했다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자기 검열, 나는 최선을 다해 내색하지 않을 뿐인데 그것이 나를 무심하고 독한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면 어떡할까 싶은 두려움. 내 '온전한' 모습을 알지 못한다고 머릿속에 선언하고 보니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자신이 없다. 정말 내가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라면?

내가 안타까워하고 동시에 미워하게 된 그 사람은 이제 행복할까?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는 나를 자신의 대척점에 세웠다. 나의 어떤 점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심지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 지조차 모르겠는데 그 사람은 이 모든 걸 단번에 알아버린 걸까? 그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까? 나는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부족해서 상상력으로 모든 것을 메울 뿐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늘 그렇듯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이번 10월은 깨닫기만 하다가 끝났다. 내 상황을, 마음을. 사실 10월뿐 아니라 다른 달도 같았다. 나는 늘 깨닫기만 하고 끝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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