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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Jun 30. 2020

2020년 상반기에 본 영화들 (1)

<닥터 두리틀> 외 9편

나는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아주 빠르게, 깊이 빠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더불어 흥미를 잃을 때도 굉장히 빨리 빠져나온다. 이런 내가 10년가량 한 번도 질리지 않은 일이 있다. 바로 영화를 보는 일. 시간이 없어서 못 볼 때는 있어도,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영화를 쉬는 일은 없었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영화를 가지고 무슨 일이든 해보고 싶은데 그게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혼자 생각하고 기록해뒀던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야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는 것만큼은 이제 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이것도 어디서 본 영화 속 대사 같은데. (?) 그런 의미에서 정리해보는 '2020년 상반기에 본 영화들'. 때마침 오늘이 6월의 마지막 날이다. 총 20편의 영화를 보았고, 두 개의 글에 나눠서 정리해본다.


<닥터 두리틀> (2020)
괴짜 천재 역할로, 할리우드 원탑 되십니다 (투탑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 대한 옛정(?)과 동물 이야기 처돌이로서 관람의 의무감 비슷한 것을 느끼고 극장에서 본 2020년 첫 영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사실 닥터 두리틀 캐릭터보다 동물 캐릭터들의 반짝반짝한 개성을 기대했다.(신체적 특성에서 기인한 성격을 확대해 활용하는 대유법이라든가.) 하지만 몇몇 중심 캐릭터를 제외하고 동물들은 애초부터 one of them이었기에 매력도 없었고, 이 뻔한 서사(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괴짜 천재가 새로운 친구를 만나 모험을 떠나고, 인간성을 다시 획득하는 이야기)를 끈기 있게 붙잡고 있을 힘 역시 충분히 제공하질 못했다.


*제 평가는요: 비추천




<스타워즈> 에피소드 1~3 (1999~2005), 그리고 <스타워즈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2019)
정말 매력적일 수 있는 캐릭터였는데...

툭 까놓고 들어갑시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스타워즈 덕후는 아닙니다. (!) 스타워즈 시리즈가 지금까지의 SF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사용된 미장센들만 비교해봐도 실감할 수 있다.) 왜인지 모르게 온 마음을 쏟아 덕질을 할 수는 없었던 시리즈. 스타워즈의 전성기였던 1990~2000년대에 그 흐름을 함께 따라가지 못해서였을까? (이때는 영화보다 투니버스 만화영화를 두루 섭렵했던 초등학생이었으므로...) 에피소드 4~6과 최근 줄지어 나왔던 시퀄, 솔로 무비들도 하나의 시리즈 안에서 생각하기보다 개별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보았더랬다. 시간은 흘러,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개봉일이 다가왔고 '그래도 스카이워커 사가 9부작의 마지막 편인데, 시리즈 전체는 한 번 씩 다 봐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의무감에 헐레벌떡 감상했다.


에피소드 1~3은 에피소드 4~6보다 덜 흥미로웠고, 덜 탄탄했다. 일단 아나킨 역할에 몰입이 안 됐다; (검색해보니 당시에도 배우의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전 시리즈를 떠올릴 수 있는 개별적 요소들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단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상'에서 끝났다는 점이 아쉬웠다. '스타워즈'라는 거대한 시리즈를 관통하는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보여준 것과 같은) 핀 포인트를 기대한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을 법한 마무리였다. 앞으로 나오게 될 스핀오프 드라마/영화들로는, 오리지널 서사 전반이 마무리되었다는 허전함이 메워질 것 같지는 않다.


*제 평가는요: 그럭저럭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
프랑스어 특유의 발음은 저엉말.... (죽음)

친한 친구가 사정상 못 가게 되어 대신 티켓을 받고 다녀온 시사회. 이 영화를 보고 프랑스어 공부를 결심했고, 지금까지(는 무사히) 현재 진행 중!


개인적으로, 문장 두 줄 정도로 스토리가 설명 가능하지만 '꽉 채워져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이 말인즉, 영화의 서사가 복잡하게 꼬여있지 않아도 영상미, 음악, 배우의 연기, 감독의 연출 등 영화적 요소로 밀도 있게 채워져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내겐 그런 영화였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프랑스 브르타뉴의 한 섬에 자리한 백작의 대저택에 머물며 초상화를 그리는 여성 화가와 결혼을 앞둔 백작부인 딸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두 인물이 숱하게 주고받은 눈길과, 쓸쓸하지만 왠지 모르게 파도가 정열적으로 부서지는 섬 풍경이, 그리고 연필과 붓이 캔버스를 슥슥 스치는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중에서


*제 평가는요: 추천




<결혼 이야기> (2019)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스틸컷

예전부터 의아했던 클리셰가 하나 있다.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서로를 등지다가도, 결정적 순간에는 서로를 붙잡고 지탱하는 관계. 바로 '부부 사이'를 묘사하는 클리셰다. 최근 한국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도 이 지점이 아주 잘 드러났다.


<결혼 이야기>는 이 클리셰를 마치 한 편의 긴 영화로 풀어낸 작품과도 같다. 한 때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사랑했던 니콜과 찰리는 가치관, 커리어 등 다양한 지점에서 갈등을 겪고 끝내 이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칼로 뚝딱 썰어 끊어낼 수 있을 만큼 부부 사이란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갈라서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았고(특히나 아들에 대한 것.) 하루에도 수 차례씩 마음을 바꿔 먹고는 한다. 지지부진하다면 지지부진한,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과정을 거친 두 사람은 결국 제 갈길을 간다.


부부 사이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의 원천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를 그저 '사랑'이라는 단어로만 보기에는 부족하다. '정'이라고 하기에는 두 사람이 지나온 뜨거운 역사를 순식간에 투박한 것이 된다. 굳이 찾자면 '애정'이 더 가깝지 않을까? 사전적 의미는 '남녀 간에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이라 한다. 이 단어가 찰리와 니콜 사이의, 부부 사이의 감정을 표현해주는 가장 적합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은 남았다. '애정'이라는 미명 하에, 찰리가 저지른 잘못들을 다 눈감아 줄 수 있는가? 눈감아 줄 수 없었기에 이혼이라는 결론이 선 것이겠지만, 그 이후에도 그 '애정'을 유지할 수 있다니. 지금의 나로서는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된다.

"내 일부는 죽은 게 아니라, 잠들어 있었어요." - <결혼 이야기> 중에서


*제 평가는요: 추천




<작은 아씨들> (2019)
내가 조였고, 조가 나였다 (...)

어릴 적 <작은 아씨들>을 읽고 정말 많은 꿈을 꾸었다. '이렇게 각양각색 매력을 가진 여자 형제들 사이에서 생활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외동인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는 여리여리한 베스에 마음이 많이 갔다. 이번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 영화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조에 스스로를 대입해 보게 됐다.


조 역할로 분한 시얼샤 로넌 특유의 넘치는 생동감이 큰 몫을 했겠지만, 조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지만 때로는 흔들리기도 한다는 점이, 사랑이 두렵지만 그럼에도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점이 그를 판타지가 아닌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심벌로서 여길 수 있게 한다.

"자매를 미워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아." - <작은 아씨들> 중에서


*제 평가는요: 추천




<아이리시 맨> (2019)
갱스터 영화의 매력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에는 팟캐스트에서 해당 작품에 대한 언급한 내용들을 찾곤 한다. <아이리시 맨>을 보고 '김혜리의 필름 클럽' 중 <아이리시 맨>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찾아 들은 것처럼 말이다. 김혜리 기자님의 의견에 따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인 '프랭크'는 전쟁에서 무언가 잃어버리고 온 사람이다. 도덕률과 관계없이,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데에 익숙해진 인물이다. 그에게 명령을 내리고 또 거두기도 하는 남자들은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전부 시시하게 죽는다. 하지만 프랭크는 계속 죽지 못한 채 이 모든 사건을 관찰하고 그 속 깊이 관여한다. 그것이 바로 프랭크가 받는 징벌이라 할 수 있으리라는 기자님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회개가 불가능할 만큼의 죄를 저지른 사람의 마음은 어떤 사막이 되어 있을까? 그들의 반성에 귀를 기울여주어야 할까? 영화는 이러한 지점을 자성이라는 명목 하에 마음껏 표현해도 괜찮은 예술인가?


*제 평가는요: 그럭저럭




<미스 아메리카나> (2020)
'13년 동안 나를 잘못 보여줬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는 그

여성의 날을 맞이해 감상한 작품. 고등학생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테일러가, 내가 알던 컨트리 뮤직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느낄 때 즈음부터 그의 음악을 찾아 듣는 걸 멈췄다. 이제와서야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됐다. '내가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엔터테인먼트를 소비하지 않게 된 것이 과연 그 이유뿐일까?' 그를 둘러싼 수많은 소문들과 사건들에 나 역시 거부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껏 자신의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가 정말 멋졌다. "저에게 일어날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곡을 쓰는 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죠." 이 말이 테일러 그 자체였다. 평생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무너지고, 이후 자주 흔들렸지만 결국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란 듯 세상 앞에 나선 사람.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내가 여전히 자기 이야기를 담아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 역시 매우 중요하게 느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작품을 소비하고 감상할 때, 그것을 만들게 된 ‘원동력’이 무엇이었을지 고민해보고, 그것이 내가 믿는 가치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역시 깊이 생각해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너무 소리가 컸나요? 내가 산 집 안에서? 내가 쓴 노래로? 내 인생인데?" - <미스 아메리카나> 중에서


*제 평가는요: 추천





나머지 10편은 '2020년 상반기에 본 영화들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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