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거의 집에 없었다. 전업 주부인 엄마는 주변에 친구가 많았고 온갖 모임으로 항상 바빴다. 언니들이 어릴 때는 치맛바람도 대단해서 자주 학교에 방문하곤 했지만, 정작 셋째인 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동네 부녀회, 교회 모임에 더 열성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맞이하는 것은 거실이나 부엌에 남겨진 엄마의 쪽지들이었다. ‘냉장고에 참외 깎아 놨으니 먹어라’ 라든가 ‘남동생이 오면 누구 집으로 저녁 먹으러 건너오라’라는 나에게 보내는 것들도 있었지만, 때로는 ‘옆 집 아줌마가 얄미운 짓을 한다.’, ‘할아버지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어디가 가기 싫으셔서 꾀병 부리는 거 같다’ 등, 내가 봐도 되는 건지 싶은 내용들도 여기저기 굴러 다녔다. 보통 사람들이 일기장을 쓴다면, 엄마는 보이는 대로 아무 종이에나 순간의 정보나 감정을 써 내려갔다. 그것들은 그야말로 아무 종이였기 때문에 크기도 재질도 다 달랐고, 시간이 지나면 그냥 휴지통에 버려지곤 했다.
어느 날 대학생이 된 큰 언니가 이모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전화했다. 언니는 이모의 세 아이들을 가끔 돌봐 주고 용돈 벌이를 하고 있었지만 잠자리가 까다로웠던 언니가 다른 집에서 자고 오는 일은 흔치 않았다. 어쨌든 나는 아무 종이나 집어 ‘언니, 작은 이모네서 자고 옴.’이라고 써서 전화기 옆에 두었고 평소처럼 저녁도 먹고 TV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문득 꿈속처럼 부모님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좀 들고 보니 언니 친구들에게 거는 전화 통화였다. 엄마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언니가 혹시 같이 있는지 묻고 있었다. 순간 낮의 전화가 생각났다. 나는 부스스 일어나 ‘언니, 이모네서 자고 온다고 했는데.’라고 말했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지르는지 나는 잠이 확 달아났다. 엄마는 급하게 이모네 전화를 했고, 이모의 말로는 안심이 안 되는지 자는 언니를 깨워 달라면서 목소리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자마자 엄마는 나의 등짝을 후려치고 왜 이제야 얘기했냐고 소리쳤다. 언니 전화를 받은 게 한 낮이었던 걸 생각하면, 저녁 내내 아무 말도 안 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게 엄마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더 큰소리를 쳤다. 전화기 옆에 쪽지가 있었는데 왜 나를 야단치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더욱 억울한 것은 내가 남긴 종이 쪼가리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그 누구도 쪽지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소리치고 울어도 나만 나쁜 사람일 뿐이었다.
그 후로 쪽지는 엄마만의 통신 수단이 되었다. 특히 나는 절대 쪽지를 남길 수 없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고, 나 자신도 굴러다니는 종이에 뭔가를 쓰고 싶지 않아 졌다. 대신 나는 작은 쪽지보다 분량의 제한이 없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일기라고는 하지만 극성스러운 언니 둘이 내 비밀을 그냥 지나칠 리 없어서, 가끔은 온 집안 식구가 내 일기를 돌아가며 읽기도 했다, 나는 그에 대한 반항으로 언니를 고자질하거나, 생일 선물이나 용돈이 필요할 때 구구절절한 사연을 풀어내곤 했다. 하지만 엄마의 쪽지가 자연스레 발견되는 것이라면 내 일기는 그 의도가 빤한 것이었다. 더욱 뻔뻔한 가족들은 내 의도를 적당히 모른 척하면서 계속해서 내 일기를 즐겨 읽었다.
이제 세월이 지나고 엄마도 아빠도 모두 돌아가셨다. 몇 년 전 엄마는 수술 후 잘 회복되지 못하다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아직 70대 중반이었던 엄마의 부고는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다. 어찌어찌 장례를 치르고 그 주말 언니들과 엄마 집에 갔다. 남동생과 같이 살고 있었지만, 집은 거의 엄마 물건으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물건을 정리하며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작은 수첩, 공책, 전단지 구석마다 엄마의 쪽지를 찾아 읽었다. 때로 우리의 어릴 적 사진 뒤에도 엄마의 글씨가 보인다. 머리띠를 두르고 체육복을 입은 남동생 사진 뒤에 ‘달리기 꼴등’이라고 달린 글은 우리 모두를 웃게 했다. 세 자매의 폐백 사진 뒤에도 글이 보이지만, 큰 언니, 작은 언니 사진 뒤엔 ‘예쁘다.’고 써 놓고 내 사진 뒤에는 ‘퐁뎅이’라는 내 별명만 써 둔 것이 좀 섭섭하기도 했다.
그날 작은 언니가 엄마의 기록을 정리해보겠다고 종이들을 챙겨 갔다. 지금도 가끔 언니는 엄마의 쪽지들을 열어 보고 재밌는 내용을 발견했다고 전화를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는 왜 아무 데나 글을 썼을까 궁금해진다. 쪽지가 없어도 엄마는 충분히 할 말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거기에 더해 이렇게 짧은 글들을 흔적처럼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진작 물어볼 걸 그랬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남아 있는 글들을 읽다 보면 그날의 일들, 감정, 분위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거 같지만 그래도 구구절절 사연이 더 있을 거 같다. 정말 살아 계실 때 더 궁금해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어쩌면 괜한 걸 물어본다고 또 등짝을 때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엄마 덕분에 내가 간간이 글을 쓰곤 한다고 말하고 싶다. 언니들처럼 열렬한 독자들은 없지만, 누군가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