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두 번 전학을 했다. 경기도에 살던 나는 5학년이 되자마자 서울로 이사했다. 당시 우리 동네에서는 초등 고학년이 되면 서울로 전학하는 것이 무슨 엘리트 코스인 거처럼 생각됐던 터라 나 말고도 많은 친구들이 쫓기듯 서울로 전학을 갔다.
첫 학교는 내가 살던 곳에서 30분도 안 걸리는 곳이어서 나는 서울로 전학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다만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다른 학교에 배정이 되어 꽤 먼 길을 혼자 걸어가야 했다는 것이 큰 변화였다. 동생이 다니게 된 신설 학교가 아직 4학년까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가서 반을 배정받고 담임 선생님과 교실에 들어갔던 날을 기억한다. 낯선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다. 그 피하고 싶던 부끄러운 순간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렇게 시작한 첫날부터 시험이 있었다. 그때는 초등학생들도 중간, 기말고사에 예고 없는 쪽지 시험까지 보는 게 흔한 일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전에 다녔던 학교에서 이미 배운 내용이라 비교적 쉽게 문제를 풀었고, 놀랍게도 나는 반에서 1등을 해 버렸다. 나를 보던 친구들의 호기심이 호감으로 바뀌는 게 느껴졌다. 국어 시간에는 교과서를 돌아가며 읽도록 시키셨다. 중간에 틀리게 읽으면 다음 친구에게 넘어가는 일종의 게임이었는데, 다소 긴장한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책을 읽어 나갔다. 평생 쓸 운을 그날 다 쓴 걸까? 나는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본문을 모두 읽어 버렸다. 이제 아이들의 눈은 호감을 넘어 숭배의 수준이 되어 버렸고 나는 새로 전학 온 천재 소녀가 되었다.
그렇게 첫날의 대박 기운으로 일 년 내내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또다시 전학을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겨우 사귄 친구들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학교로 간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6학년이 된 5월의 어느 날, 나는 다시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갔다. 절차는 같았다. 엄마와 교무실에 가서 이런저런 행정 절차를 마쳤고, 담임 선생님과 함께 교실에 들어갔다. 그날따라 엄마는 내 머리를 좀 특이하게 묶어 주셨다. 당시 유행하던 쇼 프로그램의 진행자 언니처럼 머리를 옆으로 해서 하나로 묶은 것이다. 아마 엄마로서는 굉장히 고심한 스타일이겠지만, 키도 크고 뚱뚱했던 내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떨리는 자기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고, 그날도 어김없이 쪽지 시험이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행운은 어디 갔는지, 나는 시험지의 문제를 하나도 풀 수 없었다. 선행 학습이나 학원 같은 건 없던 시절이라 새로운 학교의 진도가 빠르면 손도 댈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처참한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칠판에 몇 명의 이름을 쓰셨고 그 안에 내 이름도 보였다. 우리는 수업 후 남아서 ‘지진아 반’이라고 불리는 방과 후 교실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지진아라니? 나는 정말 땅이 흔들리는 지진을 생각했지만, 이것은 남들보다 뒤처진 바보라는 뜻이라고 했다. 나의 자존감에 큰 구멍이 뚫려 버렸다. 더욱 심한 것은 전학 온 첫날부터 내 별명이 ‘지진 머리’가 된 것이었다. 헤어 스타일도 이상한 데다 공부까지 못한다고 누군가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졸업할 때까지 그 별명이 따라다녔다.
난 정말 전 학교의 우등생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결국 졸업 때까지 남은 몇 개월은 지진 머리 꼬리표를 떼기 위한 나만의 투쟁 시기였다. 나는 누가 놀려 댈까 머리도 옆으로 묶지 않았고, 지진아반 탈출을 위해 다음 시험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며 열심히 공부했다. 결국 전학 오자마자 한 달간 희로애락을 함께하던 지진아 반 친구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며 나는 그 반을 탈출했다. 하지만 그 한 달간 받은 선생님들의 멸시와 다른 친구들의 놀림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몇 년 전 그 동네를 지나다 내친김에 학교에도 들어가 보았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어 보였던 운동장은 아담하기만 하고 새롭게 단장해 놓은 건물들은 많이 낯설었다. 뛰어놀던 아이 하나가 나를 보더니 ‘누구세요?’라고 묻는다. ‘나 이 학교 졸업했어.’라고 대답하자 다른 아이들까지 ‘와! 선배님!’이라고 합창하듯 불러준다. 새까맣게 어린아이들이 선배라고 불러주니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지금 저 아이들은 그렇게 호되고 잔인한 단어로 불리지 않을 거라 확인하고도 싶었다.
꽃으로도 때리면 안 되는 아이들에게 좋은 말만, 예쁜 말만 해주는 게 학교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