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잡아줄래?

by 고미젤리

친구 A는 다리가 불편했고, 아직 어눌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A는 먼저 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 달라고 했고, 나는 거절할 새도 없이 그 작은 손을 잡았다. 가벼운 악수를 예상했지만 그 애는 자기의 반쪽을 내게 기댔다. 그렇게 한 학기 내내 나는 그 아이의 묵직한 손을 잡고 그 아이의 지팡이가 되어 주었다.

나는 사람을 사귀기 전에 다소 긴 탐색의 시간을 가지는 편이었다. 학기 초 모두 새로운 친구를 만드느라 부산한 가운데서도 나는 조용히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나만의 관찰 시간을 가지곤 했다. 하지만 A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우렁차고 호탕하게 웃었고, 당당하고 명랑했다. A는 붙임성이 뛰어나 항상 친구가 많았고, 첫날부터 그 손을 잡은 나는 A의 친구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내가 A를 귀찮아했을까? 아마 조금은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A와 걸을 때마다 선생님들은 나를 칭찬하셨고,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어쨌든 A를 통해 나는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로 불렸다.

우리 학교는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 학습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걸음이 느릴 수밖에 없던 우리는 모두가 떠나고 없는 어두운 정류장에서 늦게까지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A는 노래를 잘했고 우리는 걷는 길 내내 화음을 맞춰 노래하곤 했다. 자연스레 학교 쉬는 시간에도 같이 음악실로 향했고, 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다 같이 노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 그룹의 다른 친구들도 노래를 잘해서, 우리의 중창은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가끔 복도를 지나치던 선생님은 언제나 흐뭇한 표정으로 칭찬해 주셨고, 수업 중 지루해지면 반 친구들은 A에게 노래를 청하곤 했다.

그렇게 건전하고 밝았던 우리의 관계는 수학여행을 계기로 어그러지고 말았다.

경주로의 수학여행을 준비하며, 우리 반 모두는 춤바람이 들었다. 그동안 숨겨왔던 끼를 마음껏 뽐내던 친구들의 현란한 댄스 연습에 쉬는 시간마다 교실은 클럽이 되었다. 나는 트로트를 멋지게 뽑아내던 반 친구의 코러스를 맡게 되었지만, 사실 김완선이나 소방차의 춤에 더 관심이 갔다. 그렇게 다들 댄스에 미쳐 있던 교실 안에서 A는 다소 소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수학여행을 가서야 깨달은 현실이었다. 걸음이 느린 A의 손을 잡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뒤처질 수밖에 없었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루로 달려가던 반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 없어, 때로 그냥 버스에 남아 있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이런 현실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그룹의 다른 친구들은 나와 집으로 가는 방향이 달라서, 방과 후 A의 손을 잡고 간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들은 내가 항상 늦은 밤 어두운 정류장에서 버스가 끊기는 건 아닌지 걱정하던 마음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한 친구가 속상했던 마음을 풀기 시작했다. 마음껏 놀 수 없어서 속상했고,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이 우리에게만 책임을 떠맡기는 것 같아 더 속상하다고 했다. 나는 A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한 학기 내내 고생한 내 앞에서 그 잠깐의 고생이 저렇게 울분을 토할 일인지,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방 한구석에 둘러앉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생각으로 서럽게 울었다. A는 미안해서 울었을 것이고, 다른 친구는 속상해서 울었을 것이다. 내 마음은 잘 모르겠다. 그냥 미안해하는 A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없어서 슬펐고, 울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위로할 수 없어서 울었다.

그렇게 어렵게 수학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나는 모두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보다 일단 회피하고 보는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고, 선생님들께도 더 이상 A를 돌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 후로 졸업할 때까지 쭉 나는 A를 외면했다. 다행히도 A는 특유의 꿋꿋한 성격 덕분에 언제나 당당하고 밝았다. 이후로 같은 반이었던 적은 없어도 A는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로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나는 그런 A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날 A가 쓸쓸하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A는 다른 사람의 연민 어린 눈빛을 싫어한다고 했다. 자기를 슬픈 눈빛으로 보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더 크게 웃고 더 명랑하게 행동한다고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나는 A와 노래하던 그 밤길의 느린 걸음을 기억한다. 나지막이 노래하던 그 아이의 깊은 노랫소리도 가끔 떠오른다. 내 일방적인 선언에 이유를 묻지도 않고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던 A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작스럽게 그 손을 놓아 버렸던 내가 큰 상처를 준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그 친구를 통해 내 안의 나쁜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칭찬에 부응할 수 없어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었고, 그날 A의 손을 덥석 잡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으며, 수학여행의 밤 눈물을 펑펑 쏟던 친구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아서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네 손을 잡아 줄게’라고 말하며 먼저 웃어 주는 친구가 될 수 없는 내가 싫었고, 그런 사람이 되어 달라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가 싫었다.

A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그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확인하지 못했던 건 결국 그 시절의 위선적인 내가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만 마음을 열었다면, A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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