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의 추억

by 고미젤리

고등학교 3학년 때 등교 시간은 아침 6시였다. 당시는 학원도 없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전부였지만, 담임 선생님은 10시까지의 야간 자율학습에 더해 6시 등교까지 강제하셨다. 그 새벽 비몽사몽 학교에 가도 정각 6시면 교실 문이 닫혔다. 아주 부지런하신 선생님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도끼눈을 하고 문 앞에 계셨고, 지각한 우리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 복도에 엎드려 앉아 1교시 시작 전까지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등굣길 버스 안에서 친한 친구를 만났다. 이미 6시가 다 돼 가는 시간이어서 오늘도 복도에 앉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지를 만나니 반가웠다. 그리고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과감히 등교를 거부하기로 했다. 무슨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어디로든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학교 앞 정류장을 지나쳐 단지 종점이 여의도라는 이유로 우리는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향한 여의도는 홍수로 난리가 나 있었다. 낭만적인 자전거 타기와 한강변 산책을 꿈꿨던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턱 밑까지 불어난 흙탕물과 그 위로 쏜살같이 떠내려가는 쓰레기뿐이었다. 그래도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흥얼대며 나름 일탈의 감정을 느껴보려 애써 보았다. 하지만 수해 복구 중인 사람들의 분주함에 우리는 이리저리 쫓겨 다니기 바빴다. 너무 이른 평일 아침이라 자전거 대여도 문을 닫았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무슨 무적의 군단처럼 바삐 걸어가는 통에 길 잃은 아이가 된 것도 같았다. 결국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겨우 10시가 좀 지나 있었다. 어떻게 조용히 들어갈까 하는 고민은 없었다. 체벌이 일상화되어 있던 시절이라 우리는 그냥 몇 대 맞고 넘어갈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 학교라 일주일에 한 번 아침 예배가 있었고 그때는 출석 체크도 없던 터라, 어쩌면 우리의 부재를 아무도 모를 수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맨 꼭대기 3학년 층으로 들어서는 순간 복도를 가득 차고 있던 친구들이 홍해처럼 갈라지며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귀신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격앙된 반응에 우리는 더 놀랐다.

그때였다. 복도 저쪽에서 우리 엄마가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 같은 슬로모션으로 달려와 나를 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 감동적인 장면에 주변 친구들도 울고 선생님들도 모두 숙연해졌다.


나중에 들어보니, 8시가 넘도록 학교에 오지 않자 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하셨고,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는 말에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한창 여자들을 납치해 어디 섬에다 팔아 버린다며 봉고차를 타지 말라는 괴담이 돌던 때였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니 우리의 행방은 아무도 모를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그야말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 놀란 엄마가 학교로 와 울고 불고 난리가 났고, 친구들도 모두 우리가 납치당했다고 확신했다고 했다.


조금 진정된 후 우리는 교무실로 끌려갔다. 평소 차갑고 무섭기만 했던 선생님이 억지로 웃음을 짓고 계셨다. 아마도 우리 엄마가 옆에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처음 들어보는 온화한 목소리로 어디 갔었냐고 물으셨다. 잔뜩 기가 죽은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여의도…’라고 얼버무렸다. 상상도 못 했던 장소가 나오자 교무실 안 모든 선생님이 어이없어하며 도대체 왜 거길 갔냐는 하셨다. 기죽은 우리는 ‘그냥 버스에서 내리기 싫어서요.’라고 기어 들아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선생님들 모두 허탈하게 웃으셨고, 우리는 그냥 고3 스트레스 때문에 잠시 일탈을 꿈꿨던 아이들로 훈방되었다.


그래도 고3 내내, 그리고 졸업하고 난 후 한참 지난 후에도 친구들은 그때의 우리를 멋있게 기억해 주었다. 우리가 행방불명된 후, 선생님들이 특이 사항을 조사했지만, 친구들 모두 우리 둘 다 좀 게으를 뿐 날라리들은 아니니 스스로 가출했을 리 없다고 증언해 주었다고 했다. 혹시라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조차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단지 뚱뚱하고 힘 좋게 생겨서 어디 공사장에 끌려갔을 거라는 둥, 힘든 일을 해낼 체력도 안 되는 애들이니 설거지나 겨우 시킬까, 납치범들이 사람을 잘 못 봤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모두들 공부로 지쳐 있을 때 우리 같은 평범한 아이들의 소소한 반항이 모두에게 대리만족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별 것 아닌 일로 덮어주고 농담 삼아 말해주던 친구들도 고맙고, 생각지도 못한 신뢰를 보여주신 선생님들도 고마웠다. 그렇게 별 것 아닌 일로 넘어간 일이었지만, 유일하게 우리 엄마만 그날을 충격적 반전으로 기억하는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대단한 가출을 감행한 듯이 조심스러워했고, 늦잠을 자 버린 어느 날은 자진해서 선생님께 전화해 없는 말을 지어내 주기까지 했다.




그게 벌써 30년도 지난 옛날이다. 이제 여의도는 고3 때 갈 곳 몰라 방황하던 장소로만 기억되진 않는다. 그 섬에서 십 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고, 이후로 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래도 어릴 때의 실패한 일탈을 동료들에게 떠벌리며 왜 하필 여의도로 탈출했는지, 여의도가 나에게 어떤 운명적 장소였는지도 모르겠다고 과장하곤 했다. 하지만 여의도는 그냥 버스 종점이었을 뿐이고,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고 기껏 도망가봐야 나는 멀리 못 가는 세상 물정 모르던 아이였다. 그래도 그 세상 물정이라는 게 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인데, 그때 그렇게 순진한 아이여서 참 다행이었다. 이제 부모의 입장이 되어 그날의 내가 크게 엇나갈 정도로 대범한 아이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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