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이 납시었다

by 고미젤리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나는 고3이라는 타이틀이 그 어떤 기행도 약간 용인해 주는 분위기라는 것을 깨우친 후, 소소하게 시작된 반항을 점점 키우고 있었다. 그래봐야 어디 가서 나쁜 짓을 할 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했던 터라, 그냥 지각을 밥 먹듯 했고 그러다 아예 학교를 안 가고 집에 퍼 질러 있는 날도 많아졌다. 엄마는 다른 여러 가지 일로 신경 쓸 일이 많아서인지, 앞서 짧은 가출을 감행한 이후로는 나를 그냥 방임하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별다른 잔소리도 하지 않고,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오면 대충 거짓말로 때워 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없이 늘어져서 삶의 허무함에 대해 고민하던 때, 참고 참던 담임 선생님이 엄마를 호출했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막 시작되어 가던 때라 모두들 대학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나만 혼자 다른 세상에 있으니 선생님도 답답하셨을 것이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시지만 나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 깊은 회의주의,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것 같다. 어쨌든 엄마를 데려오라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지난번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을 엄마에게 다시 맡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첫째 언니는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마침 우리 담임 선생님과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이라 서로 대화가 잘 통할 것도 같았다. 물론 담임 선생님은 기혼의 중년 아저씨였기 때문에 언니와 동시대에 학교를 다닌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의외로 언니는 흔쾌히 허락했다. 나는 선생님에게 엄마가 바쁘셔서 언니가 대신 오기로 했다고 이야기했고, 선생님은 좀 떨떠름해하셨다.




어느 날 오후 여지없이 엎드려 자고 있는 나를 친구들이 깨웠다. 누가 찾아왔다는 거였다. 복도가 시끌시끌했고, 첫째 언니와 함께 대학생인 둘째 언니도 와 있었다. 아마 큰 언니 혼자 가기가 좀 쑥스러웠는지 같이 왔던 것 같다.


그렇게 그 둘을 교실 복도에서 발견하고서야 나는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큰 언니, 작은 언니는 ‘누가 더 예쁜가’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위인들이었던 것이다. 그날도 그들은 교실 복도를 런웨이로 만들며 우아하게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둘 다 키도 큰 데다 복도를 가득 채운 꼬질꼬질 여고생들과 달리 화장까지 하고 있으니 정말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나는 언니들보다 최소 20킬로 그램은 더 나갔고,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지저분했으며, 어떤 자세로도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 그날도 자고 일어난 듯 부스스한 얼굴이었다. 그러니 큰 소리로 떠들어 대던 친구들을 이해 못 할 건 없었다. 뭐 저렇게까지 성장을 하고 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냥 조용히 와서 선생님만 만나고 돌아갈 줄 알았는데 굳이 교실까지 찾아와 둘도 없는 자매애를 연출하다니, 나도 어리둥절했다.


나는 언니들을 담임 선생님께 인계한 후 교무실을 빠져나왔고, 기다리던 친구들은 나를 에워쌌다. 큰 언니가 승무원이라고 하자 다들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이다. 사실 큰 언니뿐 아니라 작은 언니에 대한 질문도 꼬리를 이었다. 좀 더 과감한 스타일인 작은 언니는 자신 있는 다리를 드러내기 위한 미니 스커트에 쥐 잡아먹은 것 같은 검붉은 립스틱, 흐트러진 파마머리를 한 발랄한 여대생 그 자체였던 것이다. 친구들은 둘 중 누가 더 자기 스타일인지 토론했고, 나보고 저런 언니들과 같이 사는데 왜 그렇게 되었냐고 묻기도 했다. 내가 18년 인생에 그런 질문을 한 두 번 받아 봤을 리 없다. 아예 따라잡기 힘들다 생각되면 그냥 더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어쨌든 그날 언니들과 담임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언니들의 방문으로 나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은 대학생과 사회인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되었고, 몇몇은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학생만 되면 예쁘게 화장하고 학교에 찾아와 선생님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고도 했다. 사실 그날 집에 돌아가보니 언니들도 꽤나 흥분해 있었다. 친구들이 그렇게까지 몰려들 줄은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다. 연예인이 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아이들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복도를 지나가는데 웅성웅성하던 친구들이 쫘악 갈라지며 길까지 터주었다고 했다.




내 사춘기 시절의 방황이 이런 식으로 다른 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었다니, 세상은 이상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물론 나에게도 변화는 있었다. 온 가족이 학교를 찾아 난리 법석이 난 게 처음이 아니다 보니, 이제 남은 학교 생활은 부디 조용히 마무리하기로 결심했다. 졸업할 때까지 언니들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는 길게 달렸지만 말이다.


어쨌든 필요할 때 학교까지 납시어 준 언니들이 내 인생의 큰 후광이었던 것은 인정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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