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이 전하는 위로

by 고미젤리

초등 고학년이었던 아이가 갑자기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한다. 이미 그전에 피아니스트, 작가, 화가 등 다양한 꿈을 꾸다 흐지부지 되었던 적이 있지만, 이번엔 꽤나 구체적이다. 집에 있던 쌍안경을 찾아들더니 옥상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별을 관찰하고, 책장은 온통 우주와 관련된 책들로 채워진다. 하나에 집중하면 조금 집요 해지는 아이의 세계는 이제 우주와 별과 외계인으로 가득 찼다.

처음으로 그럴듯한 진로 계획을 세운 아이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우리 부부도 바빠졌다. 애 아빠는 그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서울 시내 천문대를 줄줄이 예약하고, 어린이를 위한 우주 관련 교육, 행사들이 우리의 주말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이의 작은 꿈과 함께 시작된 별 여행은 우리 가족 모두를 빛나게 했다.



처음으로 접한 과천과학관 천체투영관의 별들은 얼마나 실감 나던지, 실제 밤하늘처럼 360도 화면 가득 광활한 우주가 펼쳐진다. 비록 반쯤 기울어진 의자가 잠이 오기 딱 좋은 조건이었지만, 우주 이야기라면 언제나 흥분하는 아이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반짝이며 집중한다. 과학관 야외에서의 망원경 관찰도 정말 즐거운 체험이었다. 계절마다 관찰할 수 있는 별들이 다르고 지구의 공전, 자전에 따라 밤하늘 우주 상영관은 매번 다른 광경을 안겨준다. 봄 하늘의 처녀자리 스피카, 여름밤 가장 밝게 빛나는 베가라고 불리는 직녀성, 가을 하늘의 페가수스, 겨울의 베텔게우스 등 다소 생소한 별자리와 별 이름들은 처음에 그게 그거 같아 구별이 안되지만, 어느새 우리 눈에 보이는 별들은 서로 연결된 모양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이 관측에 최적일 거 같지만 사실 별을 관찰하기에는 겨울 하늘이 제일이다. 날씨가 차고 건조할수록 대기가 투명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운 겨울날 야외에서 장시간 서 있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안 그래도 천문대는 대게 도심의 불빛을 피하기 위해 산속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산속의 겨울은 훨씬 춥고 바람도 매섭다.

그렇게 1년 정도 가까운 서울 시내 천문대 과학관이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이제 우리는 지방으로 눈을 돌려 별을 쫓는 짧은 여행을 하게 되었다.

강원도 영월의 ‘별마루 천문대’는 영월 동강 주변의 한산한 국도를 따라간다. 인적 드문 산속은 우리 차가 비추는 조명 속으로 시야를 좁히고, 빛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나무들은 하얗게 가지를 드리우고 춤을 춘다. 하지만 그 차가운 밤길을 뚫고 허허벌판에 우뚝 선 천문대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릴 듯한 별들에 압도되었다. 높지 않은 산이라고 생각했던 정상에 오독하니 솟은 천문대에서는 굳이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촘촘한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익숙한 별자리인 북두칠성이 저리도 크고 선명했나 싶게 존재감을 뿜어내며 커다란 국자 모양 그대로 하늘에 둥둥 떠다닌다.

북두칠성에 대한 우리나라 설화는 아마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들을 일곱이나 둔 홀어머니가 강 건너 홀아비를 만나기 위해 매일 강을 건너는데 너무 추울까 봐 착한 아들들이 돌을 갖다 놓았고, 어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이 돌을 놓은 사람들이 나중에 별이 되었으면 좋겠다 빌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 내용인데 사실은 그 뒤의 이야기가 좀 무섭다. 욕심 많은 홀아비는 자신이 중병에 걸렸으며 아들들의 간이 필요하다는 무리한 부탁을 하고 착한 아들들은 자신의 간을 내어주려 하지만, 하늘이 감동 하사 다른 간을 구해줘서 이들이 살았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설화들은 어떨까? 러시아의 북두칠성은 말 그대로 물을 떠 올리는 국자의 모양에 착안한 이야기이다. 심한 가뭄으로 고통받던 마을의 한 아이가 들고 있던 국자가 은으로 변하며 물이 가득 찼고, 사람들이 마실수록 은이 금으로, 다이아몬드로 변하더니 결국 별이 되었다고 한다. 태국의 설화는 상당히 특이하다. 신에게 바칠 제물이 암탉 밖에 없던 노부부가 닭을 바치려 하자 병아리 일곱 마리가 같이 끓는 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설화들은 일반인들에게도 어려운 별 이름을 외울 수 있는 맥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마냥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무시할 수 없게 한다.

그렇게 2년여 정도 우주와 함께 했던 우리의 여정도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서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얼마 전 아이와 함께 TV에서 나로호 발사 장면을 보았다. 열의가 넘치던 몇 년 전 여름 방학에 우리는 그 먼 곳으로 향했고, 나로 우주 과학관은 세워진 지 얼마 안 된 최신 건물이라 사진 찍기 좋고 관람객도 거의 없어서 찬찬히 둘러보기 참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학생이 된 아이가 기억하는 나로도는 너무 멀고 썰렁한 장소가 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나로도에 다녀온 이후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는 고백이었다. 나중에 천문학자가 되면 추운 산속이나 외딴섬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그날 나로도에서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결국 별과 우주에 대한 낭만을 느낀 것은 우리 부부였을 뿐, 아이는 상당한 실용주의자였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하지만 이때의 추억으로 우리는 지금도 가끔 옥상에 올라 달과 별들을 본다. 현실의 어둠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건 항상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작은 별들 하나하나가 주는 위안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잠시 그들의 존재를 잊을 때가 있을지 몰라도, 별들은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비춰주고 든든하게 지탱해주고 있다. 또 누군가는 별들을 연결해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우리 아이처럼 미지에 대한 꿈을 꾸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밤 가을 별자리인 페가수스와 안드로메다를 한번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