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이제야 깨닫는다

by 고미젤리

얼마 전 입시 컨설팅 회사에서 부모 인터뷰 요청이 왔다. 입시를 치른 건 아이지만 부모의 경험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신기했다. 게다가 소정의 현금까지 준다고 하니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부담스러운 유튜브 출연은 사양하고 질문지에 대한 서면 답변만 참여하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 후 받아 본 이메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질문이 담겨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광범위한 질문을 담고 싶겠지만 그 정도가 심했다. 예를 들어, 태몽은 무엇이었는지, 달 수를 다 채워서 낳았는지, 몇 개월에 걷기 시작했는지, 언제 말을 시작했는지 등 도대체 대학 입시와 무슨 관련이 있나 싶은 것들이 많았다. 억지로 이 뜬금없는 질문을 한 입시 컨설팅 회사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보자면, 회사는 공부에 영향을 준 모든 데이터를 모아 결정적 영향력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태몽에 대한 첫 질문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딸은 태어날 때 엄청난 우량아였다. 막 달로 갈수록 아이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는 거 같아 수술을 고민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엄마 골반으로는 걱정 없어요.’라며 자연 분만을 자신했다. 다행히 주수를 꽉 채우고도 3일이 지나 자연 분만을 했고 예상대로 딸은 다른 애들에 비해 많이 컸다. 아이가 나오자마자 의사와 간호사는 모두 탄성을 내질렀고, 당장 가방 메고 중학교를 다녀도 될 것 같다는 둥, 개원 이래 신기록이라며 플래카드를 걸어야겠다고 웃기도 했다. 진짜 신생아 대기실에 누워 있는 우리 딸은 다른 아기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남편이 유리창 너머로 아이를 보고 있는데, 다른 가족들이 우리 딸을 보며 놀라는 걸 보고 차마 자기 애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딸이 나중에 농구 선수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저리 크니 적어도 180 센티미터는 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 형제자매들이 키가 좀 크다. 언니들은 모두 나와 비슷해서 170이 넘고, 남동생도 190이 넘는다. 그러니 딸이 클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했고, 혹시나 너무 큰 키로 생활에 불편이 생기는 건 아닐까 우려도 됐다. 하지만 그야말로 괜한 걱정이었다. 키는 8개월 즈음 이미 다른 아이들에게 추월당했고, 뒤집기나 배밀이, 옹알이 같은 발달도 조금씩 느렸다. 또래 아이들은 돌잔치 때 혼자 뛰어다니곤 하던데 우리 애는 돌 지나고도 한참 네 발 보행을 했고, 다들 숟가락으로 밥을 먹을 때도 여전히 양손으로 뭉개고 흩트리며 먹었다. 낯가림도 심하지 않았다. 사람들 하는 말이 똑똑한 아이들이 낯을 가린다 던데, 우리 애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덥석덥석 잘도 안겼다. 병원에 가도 방실방실 웃었고, 주사 맞을 때만 잠시 ‘앵’ 할 뿐 곧바로 미소를 되찾았다.


아이가 잘 안 크는 데는 밥을 느리게 먹는 것도 한몫했을 것 같다. 반찬 투정을 하는 건 아닌데 깨작깨작 조금씩 오래 먹었다. 집에서야 세월아 네월아 먹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지만, 유치원에 들어가 급식을 먹기 시작하니 좀 문제가 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얼른 먹고 나가서 노는 데 우리 애는 소여물 씹 듯 오물오물 야금야금 답답하게 먹고 있으니 친구들은 기다려주지 않고, 결국 아이는 양껏 먹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 버릇은 중고등학교 가서도 계속되었다. 다행히 친구들이 밥 천천히 먹기를 다이어트 요법으로 생각해 줘서 ‘우리 애처럼 밥 먹기’를 따라 하기도 했다 던데, 성질 급한 아이들 모두가 포기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느리고 답답한 성격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끈기는 정말 대단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할머니와 다니던 교회에서 영문 성경 암송 대회가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영어가 좀 오래된 말들이라 외우기 쉽지 않았을 텐데 상금에 눈이 어두워진 아이가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문장에 며칠을 끙끙 앓더니 급기야 책상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울기까지 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그만하자고 설득했지만 도대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화가 난 남편이 종이를 뺏아 버렸지만 아이는 자기 손으로 베껴 쓴 연습장을 꺼내 다시 외우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 때문에 종교도 없는 우리가 그 주말 교회에 갔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얼마나 열심히 암송하던지 그 노력의 과정을 알고 있는 나는 약간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중학교 때는 체육 시간 장애물 달리기가 느리다며 매일 밤 운동장에 나가 연습을 하기도 했다. 굳이 이런 체육 과목까지 열심히 해야 되나 싶어 대강하라고 충고했지만 역시나 말을 듣지 않았다. 아이 아빠가 강아지용 울타리로 장애물을 만들어 주고 뛰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가며 분석까지 해줬지만 기록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을 돌았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성실성에 조금 질려 ‘쟤가 누구 딸인가’를 두고 한참을 옥신각신 했다. 결국 체육 수행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처음 기록보다 많이 좋아져 칭찬받았다고 했다. 그나마 이 피나는 노력의 과정을 담은 에세이로 교내 글쓰기상을 받은 것이 의외의 결실일 수도 있겠다.




내가 우리 딸의 몇 가지 기억을 아름답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나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아이들과 내 아이를 비교하며 노심초사했던 마음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입시가 아이 인생의 마지막 목표인 양 점수를 비교하고 아이의 노력을 채근하며 얼굴을 붉히곤 했다. 설문지 덕분에 아이의 성장 과정을 상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점은 참 감사했지만, 결국 나는 서면 답변도 안 하기로 했다. 결과만 좋으면 지난 과정의 모든 것이 성공의 지름길로 여겨지는 것과, 그것을 맹신하게 만드는 고액의 입시 컨설팅 산업에 대해 불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깨어나는 것이다.’라는 다소 무미건조한 구절을 읽고 입시에 지쳐가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꿈을 묻는 것은 그들이 꿈꿔왔던 것이 불가능하니 그 헛된 꿈에서 깨어나라고 해주는 것과 같다. 입시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니 더 이상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인지.’ 해맑게 묻지 말자. 아이들은 우리가 물어보는 ‘꿈’이 대학이고 직업이고 돈벌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컨설팅이라는 멋진 말로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는 회사들도 사실 아는 게 별로 없고 뭘 알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엄마로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나와 다른 하나의 인격체인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의 성장을 칭찬해 주는 넓은 마음을 갖는 것뿐이다. 뒤늦게 이런 깨달음을 준 설문지가 고맙다.

이전 07화밤하늘이 전하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