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

- 비밀입니다 4

by 고미젤리

휴가에 들어가고 일주일 후, 수경은 아들을 낳았다.

사실 의사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제왕절개 수술을 권유했을 때, 수경은 이를 쉽게 받아들였다. 사주팔자를 신봉하는 시댁 어른들이 진작부터 날짜와 시간을 받아와 부부에게 내밀었고, 이미 태어날 아이의 성별이 아들이라는 걸 알고는 그 압박이 더 심했던 것이다. 그러니 수경은 의사의 권유가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시댁의 처사가 맘에 안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요즘 시대에...”

그녀는 시댁 흉을 보며 이 말을 자주 했다. 요즘 누가 아들 아들 하는지. 출산 전까지 회사 다니느라 고생한 며느리 걱정은 추호도 없는지, 야박한 시어른들이 서운했다. 큰 손주라고 좋아라 하던 모습도 잠시, 혹시나 애기 좀 봐달라 할까 봐 걱정인지 여기저기 아프다는 소리만 해대는 시어머니의 속셈도 빤히 보였다.

수경은 잠든 아들의 새근새근 숨소리를 들으며 ‘이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른하게 한숨을 쉬었다. ‘밤새 모유 수유에 지치고, 낮과 밤이 언제인지 몽롱해서 기분이 이런 거겠지. 아니면 이게 그 산후 우울증이라는 건가’ 수경은 가슴이 답답해지고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아기 엄마’라는 역할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 박상무의 전화가 왔다.


수경은 핸드폰 화면에 뜨는 박상무의 이름을 보며 그걸 오래 뭉개고 무시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게 상사의 이런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이구나 싶어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아직 회사원의 틀을 깨지 못한 수경은 결국 참고 참다 뒤늦게 문자를 보냈다.

‘상무님, 죄송합니다. 이제야 전화하신 걸 알았네요. 지금 통화 가능하실까요?’

문자가 가자마자 박상무의 이름이 핸드폰에 떴다.

“수경 씨. 건강하지?”


끈끈한 박상무의 목소리,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다는 생각이 드는 게 신기했다. 그는 다짜고짜 언제 복직하냐고 물었고, 수경은 이런 질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이 이상했다.


“상무님, 저 아이 낳은 지 아직 한 달밖에 안 됐어요.”

말끝을 흐리며 수경은 자신의 출산 휴가, 이어 붙인 연차 휴가, 곧이어 쓸 예정이던 육아 휴직까지 머릿속으로 재빨리 흩었다.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요. 육아 휴직까지 이어서 쓸 거라고 그때 말씀드렸는데요.”

박상무가 이런 그녀의 일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수경은 휴가에 들어가기 전 새로운 비서를 뽑은 것도 이에 대한 대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삼 이런 질문을 바로 던지는 걸 보면 박상무가 뭔가 급하긴 급하다는 신호일 수 있었다.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혀까지 끌끌 차며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육아 휴직은 좀 있다 쓰면 안 될까? 김지윤이가...... 걔가 좀......”


순간 수경의 호기심 레이다가 바짝 섰다. 이럴 때일수록 직접적으로 묻지 말고 돌려 말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며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아주 무해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갓난 아기라 저도 적응하기 바빠서요. 회사 관련해서는 요즘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요.”

박상무는 수경의 사정에는 관심이 없는 듯,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수경 씨가 2~3개월 정도만 있다 오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거 같긴 한데 말이지.”

그는 어딘가 더 조용한 장소를 찾는 듯 잠시 전화를 들고 움직이더니, 좀 전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경 씨, 김지윤이 그 얘기, 알고 있지? 이 차장이 같이 들었다고 말하던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 이 차장과 함께 지켜주자 약속했던 그 비밀을 박상무가 언급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차장이 자진해서 그 이야기를 꺼냈단 말인데, 평소 그에게 사적인 얘기를 절대 꺼내지 않는 이 차장이 할 법한 행동이 아니었다. 다소 소심해진 수경은 박상무의 의도를 더 파악하고자 애썼다.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계속해서 가능한 제일 이른 복귀 날짜를 대라고 수경을 압박했다. 결국 수경은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박상무에게 물었다.

“김지윤 씨가 퇴사하는 건가요?”


박상무는 긴 한숨을 내뱉으며 투덜댔다.




“그 친구한테 절대 말하면 안 돼. 조용히 내보내야지. 그 자식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어 요즘.”

이전 03화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