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네 집으로 6
명주는 공장을 그만두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자식 하나 없던 예전 식당 주인아줌마가 언젠가 그 식당을 물려주겠다며 그녀를 불러들였다. 하지만 명주는 그런 작은 식당에서 쪼글쪼글 할머니가 되긴 싫었다.
‘검정고시라도 봐야지.’
대학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공부라는 끈을 놓아버린 건 두고두고 후회됐다.
"언젠가...기회가 되면 꼭 다시 공부해야지." 명주는 혼잣말로 되뇌었다.
그런 와중에 언니가 결혼했다.
언니는 마지못해 엄마와 명주를 초대했지만, 시댁에 비해 처지는 집안 내력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명주의 이혼은 비밀이 되었고 엄마는 번듯한 식당 주인 역할을 떠맡았으며, 평생 가난하게 살다 가신 아버지는 강원도 어느 지역 유지로 둔갑했다.
명주는 언니 결혼식 내내 행여 무슨 실수라도 할까 긴장하며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었다. 형부는 배도 나오고 머리도 벗어진 내일이면 40이 되는 아저씨였지만 모두 그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고 수군댔다. 하지만 30이 갓 넘은 언니도 ‘노처녀’ 소리를 듣는 판에 형부의 그런 외모는 흠이 될 건 아니었다.
그렇게 언니가 결혼을 하고 명주는 두 집 살림을 떠맡게 되었다. 매일 출퇴근과 야근으로 바쁜 언니를 위해 명주가 그 집 청소와 빨래까지 도맡아야 했던 것이다. 언니가 아들을 낳은 후로는 조카 뒤치닥 거리도 다 자기 몫이 되었다. 집에 혼자 있는 엄마가 걱정됐지만, 언니가 퇴근이 늦어지면 어쩔 수 없이 애와 함께 자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났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이 지나며 명주는 어느새 언니 집이 자기 집 같아졌다. 종달새같이 지저귀던 조카 재석이는 유치원에서 오자마자 명주의 치마폭에 안겼고, 그 아이를 씻기고 먹이며 그녀는 자기가 진짜 아이 엄마인 듯 느껴졌다. 길에서 재석이가 자신을 ‘이모’라고 부를 때는 가슴 한편 허전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명선은 명주에게 이제 집에 그만 오라고 전했다.
동생이 집안일을 한다는 걸 안 시어머니가 노발대발해, 내 아들 돈으로 친정집까지 먹여 살린다고 억지를 부렸다고 했다. 모든 것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었다. 명주는 야반도주하듯 저녁도 못 먹고 언니네 집에서 떠밀려 나왔다. 그동안 드나든 세월로 명주의 손 때가 묻은 물건들이 많았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옷도 거의 다 됐는데, 이제 마무리만 하면 바로 입힐 수 있을 텐데...’
명주는 조카 재석의 유치원 졸업식을 위해 빛깔 고운 따뜻한 카디건을 뜨고 있었다. 그녀는 언니네 집에 있던 명작동화 ‘백조왕자’를 조카에게 읽어주며, 자신이 묵묵히 뜨개질을 하는 공주라고 상상했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아이에게 입히면 어린 조카의 잦은 병치레도 뚝 떨어질 것 같았다.
‘부지런히 떠서 진즉에 입혔더라면...’
명주는 그때 완성하지 못한 카디건 조각을 생각하며, 팔은 이어 붙이지 못했더라도 조끼처럼 입혀 볼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미처 완성되지 못한 옷을 입은 막내 백조왕자가 변신하지 못한 날개를 퍼덕이던 그림도 떠올렸다.
“그때 뜨개질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재석이 키가 작은 거야.”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흘러 조카가 어른이 되었어도, 명주는 재석이의 작은 키가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언니에게 대놓고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조카를 보면 항상 마음 한구석 엉켜진 실타래처럼 마음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