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민센터에서 통기타 강좌를 듣고 있다. 코로나 19 직전 개설된 강좌는 몇 달간 휴강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유지되었고, 지금도 많은 회원들로 북적북적하다. 단지 개강 초기 멤버는 이제 4명만 남았고 신규 회원들과는 진도가 다르다 보니, 서로 교류는 많지 않다. 예전에는 어설프게나마 같이 발표회도 나가고 했는데, 그런 행사가 몇 년 간 없어 더 소원해진 것도 있다. 하지만 이 작은 기타반에도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초창기 회원은 20명이 넘었다. 모두 완전 초짜들로 시작한 반이라 어떻게 기타를 잡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강사님은 반장을 한 명 뽑아 여러 전달 사항을 대신 관리하도록 했다. 다행히 맨 앞줄에서 항상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시던 분이 나서셨다. 그분은 집으로 가는 방향이 나와 같아, 끝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던 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딩가딩가 배우던 어느 날, 반장님이 강사님에 대해 불만을 말씀하셨다. 다른 데서 배워 본 적도 없어 강사님과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연습으로 이만큼 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반장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반장님은 강사님의 여러 가지가 다 불만이셨다. 사실 그분이 스스로 말하기 좀 부끄러울 것 같은 말씀을 잘하시긴 했다. 어디 가서 우리가 배운 노래를 연주하면 다들 깜짝 놀랄 거라는 둥, 이렇게 세세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오직 자신뿐이며, 이런 강사님에게 배우는 우리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알아야 한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사실 그 깜짝스럽고 감동적인 노래들은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나 한영애의 ‘옛 시인의 노래’ 같은 것들이었고, 가끔 정말 처음 들어보는 70년대 노래들도 많아서 나도 강사님의 자아도취에 호응하기가 좀 버겁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야 어차피 초보고, 노래를 가려가며 배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 하는 수밖에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반장님은 강사님 연세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거라고, 요즘 젊은 강사들도 많은데 왜 저런 사람을 쓰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냥 적당히 호응해 드렸고, 우리 둘만 있다 보니 좀 더 허심탄회하게 얘기하시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시간, 반장님이 문자로 끝나고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고 강사님 모르게 조용히 5층에서 만나자고 했다. 처음엔 나에게만 보낸 문자인가 싶었는데, 끝나고 눈치를 보니 모두 같은 내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설마 강사님에 대한 불만을 공론화하자는 건가 화들짝 놀랐고, 다른 분들은 무슨 공지사항이 있는 건가 잠시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그렇게 떨떠름한 마음으로 우리는 5층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반장님은 강사의 강의에 문제가 있다며 우리가 단체로 건의하면 강사를 바꿀 수 있으니 동의해 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물었고, 반장님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본인이 아는 젊은 강사가 있는데, 자리만 있다면 바로 와 주기로 했다고까지 하셨다.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 싶게 이미 대안까지 마련해 두셨던 것이다.
그때, 문제의 강사님이 나타나셨다. 이미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흥분한 목소리로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우리 모두는 마치 범죄현장을 들킨 양 안절부절못했지만, 반장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회원 모두가 반장님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주장하더니 갑자기 나를 지목하며 ‘저 친구도 강사님 노래가 너무 올드하답니다.’라고 소리쳤다.
등에 땀이 쭉 흘러내렸다. 난 그냥 반장님 하는 말씀을 들어드린 거였는데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다른 회원들이 그들을 뜯어말렸고, 몇몇 회원은 이런 소동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지 바로 돌아가 버렸다. 나도 얼른 그들을 쫓아 그냥 그 자리를 피했다. 아무리 그래도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강사님을 이렇게 바꾸는 건 아니라며, 나에게 반장님에 대해 묻는 분도 계셨다. 정말 난감해진 나는 그냥 소소한 불만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다고, 나는 그냥 집이 같은 방향이라 우연히 들었던 것밖에 없다고 변명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강사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반장님의 독단적 행동이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그분은 이제 그만두기로 하셨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반장님에게 동의하는 회원이 아무도 없었던 거 같다. 강사님은 이번 일로 적잖이 상처를 받으셨다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길게 보내셨고, 불만이 있으면 본인에게 먼저 이야기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실패한 쿠데타를 일으켰던 반장님도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가끔 마주쳤다. 초기에는 나보고 아직 기타를 배우냐고, 그 강사님 여전히 잘난 척이냐고 신랄하게 물으시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그 후로 기타를 배우지 않고 있다고, 집 바로 앞에 있는 문화센터를 두고 멀리까지 배우러 갈 체력은 안 되서라고 쓸쓸하게 말씀하셨다.
지난주에는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라는 가사의 ‘장미’를 배웠다. 도대체 언제 적 노래냐고 딸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기타를 배운 사람이라면 이 곡의 리듬이 얼마나 어려운 지 이해할 것이다. 게다가 이번 학기 새로 등록한 초짜 회원들이 우리 상급반의 연주를 부며 부러워하는 걸 보니, 나도 많이 늘었구나 어깨도 으쓱해진다. 내가 무슨 대단한 기타리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건 아니지만 매주 꾸준히 다니다 보니 손가락에 자랑스레 굳은 살도 배기고, 흘러나오는 노래들의 리듬과 코드를 나도 모르게 따라 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강사님은 자기가 기가 막힌 노래를 다음 주에 가져올 거라고, ‘와! 그 노래 하나면 그냥 다 끝나.’라고 너스레를 떠신다. 그런 큰소리에 익숙해진 나도 ‘장자기장자 지기지기 장자’ 기타를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