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미젤리 Oct 23. 2023

분주함은 출발 전까지

북캉스 1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4050 북캉스 참여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이런저런 행사, 전시 관련 알림에 무조건 신청부터 해 놓고 보는 나는 순간 ‘이게 뭐였지?’ 혼란스러웠다. 카톡과 문자를 뒤지다 마지막으로 이메일까지 열어보고 나니 거기에 관련 뉴스레터가 보인다. 40, 50대 독서 클럽 참여자들을 위한 행사로, 10월부터 3주간 매주 금, 토 열리는 1박 2일 행사였다. 첫째 주는 힐링, 둘째 주는 역사, 셋째 주는 자연이 주제였고, 내가 참여하게 될 행사는 첫째 주, 강원도 정선에서 열리는 힐링 여행이었다.


당장 동반 1인을 찾는 일이 급선무이다. 책을 읽는 것도 싫은데, 그걸 읽고 토론까지 하는 걸 이해 못 하는 남편과 딸은 ‘책’ 이야기만 꺼내도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하지만 1박 행사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생판 남과 한 방을 쓰기는 싫어 어떻게든 둘 중 하나는 나와 가줘야 했다. 딸은 중간고사도 있고 절대 안 된다 하니, 남편을 공략했다. ‘그냥 몸만 가면 된다. 모든 게 무료다. 지난번 갔던 하이원 리조트에서 1박이다.’ 모든 걸 들이대도 모르는 사람과 여행은 딱 질색이라고 한다. 이럴 거 혼자 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애원과 협박을 뒤섞어 결국 남편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최근 여행의 DNA를 잃어가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집안의 터줏대감 어르신, 앞 못 보는 강아지 할아버지 때문이다. 요즘 부쩍 움직이기를 싫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밖에 나가 일을 보는 깔끔한 성격이라, 한 번이라도 놓치면 집 안을 어지럽힌다. 앞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요구 사항이 있을 때마다 제 자리에서 ‘멍멍’ 짖기만 하니, 혹여나 그 큰 소리가 이웃에 피해가 갈까 미리 알아서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 것도 큰 일이다.


다행히 금요일 오전 시험을 끝내고 딸이 집에 일찍 돌아와 강아지를 살펴 주기로 했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위한 첫 일정으로 새벽 일찍부터 산책길에 나섰다. 7시 버스를 예약했으니 집에서 6시에는 나가야 했다. 그러니 곤하게 잠든 강아지를 억지로 깨워 서둘러 산책길에 나선 것이다.


문 앞에서 길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까지 쩍 하고 난 강아지와 새벽의 알싸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다. 새벽의 거리는 낯설다. 밤보다 더 밝은 별들이 하늘 한 가득인 것에 놀라고, 사람 하나,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조용함에도 놀란다. 해뜨기 전 동네는 생과 사의 어떤 빈 공간 같은 낯선 느낌이다. 오늘 여행도 그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일상의 가운데 여백을 줄 수 있는 한가로운 시간이었으면 싶다. 어쩌면 세 가지 테마의 여행 중 ‘힐링’을 택한 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침부터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차분하면서도 낯선 마음으로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20명이 함께 하는 여행이라 들었는데, 서울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버스를 이용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우등버스에 잔여석도 얼마 없어 남편과는 떨어진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줌을 통해 사전 미팅을 해서인지 낯익은 얼굴들도 좀 보였지만 벌써부터 친목을 다지고 싶지는 않다. 급하게 뛰어온 아침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버스에 나른한 몸을 파묻는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나는 언제나 여행을 떠나기 전이 더 분주하다.  



작가의 이전글 목표는 입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