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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젤리 Nov 24. 2023

꺾이지 않는 마음

- 90년대 승무원 이야기 8

 나는 인천공항이 개항하기 전 승무원을 그만두었다. 서울의 국제공항은 김포 공항으로, 여기가 국내선은 물론 국제선 1,2 터미널까지 자리했던 우리나라 제1의 공항이었지만 24시간 운영은 아니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밤 새 날아와도 새벽 6시가 넘어야 내릴 수 있었다. 




 하루는 길고 긴 미주 비행을 끝내고 1번으로 서울에 도착했다. 비행도 순조로웠고 승객들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승무원들도 화기애애했다. 이렇게 모든 게 완벽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날이지만, 세상은 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새벽 6시 첫 도착의 문을 열고 들어선 김포 공항은 잠에서 막 깬 듯한 나른함이 있었지만, 10시간여의 비행을 마친 승무원들은 아직 그 활기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를 꼬박 새우며 정신없이 비행하고 나면 내려서도 그 흥분이 가시지 않아 과한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곤 했던 것이다. 그날도 동료 승무원들과 하하 호호 수다를 나누며 공항 입국 심사를 지나치고 세관 검사대를 지났다. 손님들보다 승무원들이 검사대를 일찍 통과할 수 있어서 세관 앞은 다소 한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난데없이 강렬한 담배 연기가 느껴졌다. 냄새의 원인을 찾아 둘러보니, 입국심사대 옆에서 어떤 공항 직원이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도 보였다. 


 90년대가 아무리 담배에 좀 느슨한 시절이었다지만, 그래도 국제공항 실내에서 흡연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눈이 마주친 다른 세관 직원에게 ‘실내에서는 금연 아닌가요?'라고 말하며, 담배를 피우는 직원을 슬쩍 쳐다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무슨 정의의 실현을 위해 강력하게 항의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순간적으로 담배 냄새가 거슬려 내뱉은 말이었다. 그야말로 밤새 날아온 흥분이 내 입을 놀린 것이다. 어쨌든 내 말을 받은 세관 직원이 뭐라 뭐라 변명의 말을 했던 것도 같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비행을 마무리하고 집에서 한숨 푹 자려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승무원들의 관리를 맡고 있는 코디네이터 선배였다. 코디 선배는 다짜고짜 오늘 아침 공항에서 금연 어쩌고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내가 정신이 좀 맑았다면 ‘아니오.’라고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을 지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나는 ‘네’라고 대답해 버렸다. 코디 선배는 이제야 범인을 잡았다는 안도감을 내뱉으며, 오늘 하루 종일 몇 편의 승무원 몇 십 명에게 전화를 돌렸고, 그런 소리를 한 사람은 물론 목격자도 없었다며 짜증을 냈다. 그리고 소리쳤다. 도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해서 문제를 만들었냐고 말이다. 


 코디 선배의 말로는, 담배를 피우고 있던 공항 직원이 곧 정년 퇴임을 앞둔 굉장한 선임이며, 딸 뻘 되는 어린 승무원의 지적질에 굉장히 광분해 있다고 했다. 앞으로 우리 회사 승무원들은 고강도의 세관 검사를 각오하라며 복수까지 다짐했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생각 없이 던진 조약돌에 파도가 치고 대홍수가 난 느낌이었다. 

 

선배는 당장 회사로 오라고 했다. 와서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문을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사과문까지 작성하라는 건지, 게다가 그걸 들고 직접 찾아가 사과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당장 때려치울까? 익명의 독자로 신문사에 제보를 해 버릴까? 승객을 가장해 공항 세관 직원들의 흡연을 고발해 볼까? 어쨌든 일개 승무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일단 회사에서 오라니 가볼 수밖에 없었다.

 

잠도 못 자고 마지못해 나서려는데, 선배 A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내가 범인이라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며 어쩌다 그런 말을 했냐고 위로하는 듯했지만, 살짝 즐거워하는 기색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선배 A는 우리의 비행 후 2번으로 공항에 도착했고, 짐 검사를 하던 세관 직원이 방금 지나간 주니어 승무원이 이런 말을 했다고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선배 A는 득달같이 회사로 달려가 이 모든 일을 보고하고 일을 크게 만들었던 것 같다. 마침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는 그 공항 직원과 친분이 있던 임원 한 분이 화들짝 놀라 그에게 전화를 했고, 공항 담배 직원은 뒤늦게 어린놈이 어쩌고 하면서 화를 냈다고도 했다. 아마도 선배 A는 일이 커진 데 대해 좀 미안한 마음이 생겼는지, 나에게 위로의 전화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선배는 나에게 과자 세트 같은 걸 하나 사서 공항 직원에게 찾아가 사과하라고 했다. 연세도 좀 있으신 분이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실 거라고도 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리 잘 못해서 그렇게까지 사과를 하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정말 그만두고 말겠다는 투지까지 생겼다.




 나는 불타는 마음으로 회사로 달려가 코디 선배를 맞닥뜨렸다. 고분고분 사과문을 작성할 줄 알았던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 코디도 놀란 눈치였다. 나는 사과문 같은 건 쓸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잘못한 게 무언지 알 수도 없고, 마치 학생처럼 이런 질타를 받아야 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도 했다. 서로 논쟁만 이어지다 보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지친 코디는 사과문 대신 육하원칙에 의한 경위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반성의 기미는 절대 내비치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작성해 제출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 회사로부터의 압력은 더 없었다. 중간에 괜히 끼어들었던 선배 A에 대한 반발심은 여전했지만, 다행히 같이 비행할 일도 별로 없었다. 


그때 지금의 이 표현을 알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승무원이 서비스직이라고 해서 모든 일에 대해 무조건 ‘YES’만 외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손님이라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유로,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승무원 주변에는 수많은 갑질 군단이 있다. 그래도 이런 불합리한 일들이 90년대나 가능했던 일이었을 거라고 위안해 본다. 요즘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때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여 줬으니, 그 후로 나 같은 작은 도전이 쌓이고 쌓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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