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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Jun 15. 2021

내가 사랑했던 금요일

하노이에서 맞이하는 12번째 금요일

21년 6월 11일 금요일

흐리지도 맑지도 않은 애매한 날씨 하지만 선선한 저녁이 기다리고 있었던 날




 내가 사랑했던 금요일을 자주 보냈던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금요일마다 내 머릿속을 가득히 채우는 사람이었으며 내가 아는 사람 중 금요일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각각의 요일에 무수히 만났지만, 나는 금요일에 만나는 그녀가 가장 좋았다. 우리는 금요일이면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려 했던 모습을 휙 버려둔 채, 자신의 완연한 불안정함을 온몸으로 두르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불안정한 옷을 입었지만 편했다. 내게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일주일 중 무슨 요일이 가장 좋냐는 질문에 나는 항상 금요일이라 답했다. 금요일은 평범하고 반복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직장인의 모습을 한 나의 일상과 동시에 일로 인해 잠시 고이 잠들게 했던 원래의 내가 슬금슬금 깨어나는 요일이다. 나는 그런 금요일을 좋아했다. 두 가지의 모습을 함께 지닌 변화무쌍한 금요일이 좋았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12번째 금요일이다. 지난 몇 년 동안의 금요일처럼 흥미로운 금요일은 아니다. 벌써 12번이나 맞이한 금요일인데도 이 잔잔하고 평화로운 금요일은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사랑했던 금요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눈을 뜨니 따사롭던 햇살은 저 멀리 가버리고 어둑한 하늘이 점점 깊이를 더해갔다. 내가 사랑했던 그러나 이젠 사라져 버린 그 금요일은 시작되었고 애석할 만큼 잘 흘러가고 있었다. 이런 상실감을 뒤로한 채 나는 눈치 없이 배가 고팠다. 금요일은 떠나갔어도 밥은 먹어야 했고, 어제 먹고 남은 카레와 우동면을 곁들여 먹었다. 12번째 맞는 금요일 저녁은 내가 좋아하는 카레, 내가 좋아하는 면을 함께 먹고 내가 좋아하는 맥주도 한잔 마셨다. 이렇게 하면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볼 수 없었다. 금요일이지만 내겐 더 이상 금요일이 아니었다.




 그녀와 세 시간 정도 통화를 했다. 어제 만나서 이야기를 한 것처럼 매끄럽고 편안한 대화였다.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좋아하는 술도 한 잔씩 마시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비록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지만 아주 가까이 있는 느낌이었다. 공허하고 헛헛한 금요일이 꽉 찬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금요일의 불안정하지만 편안한 그 느낌이 이곳에 찾아왔다. 영원히 잊어버린 채 찾지 못할 것 같던 내가 사랑했던 금요일이 잠시나마 찾아와서 너무 기뻤다. 기뻤다는 표현보다 더 황홀한 표현을 하고 싶은데 그냥 기뻤다는 표현이 제일 적합하다. 기뻤다. 너무나도. 그리고 그녀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고마웠다.


 사실 내가 사랑했던 금요일은 불안정 속에 편안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었기에 좋았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한 가지면 충분하고 그것은 단순하다. 앞서 몇 가지의 이유를 설명했지만 사실 나는 그녀가 있었기에 금요일과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였기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지난 금요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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