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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Jun 12. 2021

너 알콜중독 아니니?

술을 좋아하는 딸과의 시원한 대화

21년 6월 7일 월요일

세차게 비가 오는 바람에 바삭한 파전과 달큰한 두부김치 그리고 막걸리가 간절했던 날



 나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맥주를 즐겨 마셨다. 정확히는 여러 가지 술을 즐겨 마셨다. 아주 정확히는 나라가 법적으로 허용한 20살 때부터 술을 즐겨마셨고, 10년이 넘게 이 행위를 즐기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좋아서 술을 즐긴다고 한다. 물론 나도 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분위기보단 그냥 술이 좋아서 술을 즐긴다. 술이 맛있다.


즐겨마시는 맥주는 박스로 구매합니다

 이곳에 와서는 다른 술보단 맥주를 주로 마신다. 소주를 마시기엔 적당한 안주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집에서 마시는 소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와인은 코르크 마개를 여는 순간 그 한 병을 다 비워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 때문에 잘 마시지 않는다. 무조건 과음을 정해두고 마시게 되는 술이기에 쉽게 꺼내지 않는다. (사실 뭘 마시든 늘 과음하면서 와인에게 아주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있다.) 그 외 보드카는 토닉워터와 적절한 비율로 타 마시는 것이 귀찮아서, 위스키는 원래 안 좋아해서, 막걸리는 이 나라에서 비싸서 등등의 이유로 가장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맥주를 주로 마신다.


 내 입맛에 잘 맞는 맛있는 맥주를 찾았음과 동시에 맥주의 가격이 저렴해서 더욱 데일리알콜로 선택되고 있다. 맛있는 저녁 식사와 함께 반주를 하는 것은 거의 매일 있는 일이며, 무더운 날씨가 집을 점령할 때면 냉장고에 24시간 대기 중인 시원한 맥주를 꺼내 잠시 쉬어가곤 한다. 그리고 때때로 지독한 습관은 나를 맥주 앞으로 데려갔고, 그 무서운 습관은 나도 모르는 사이 맥주에게 내 목구멍을 내어주게 했다.  





 엄마는 내 곁에 없었지만 이런 나를 잘 알고 있었다. 가끔 내려가는 집에서 아빠와 함께 맥주 혹은 막걸리를 자주 마셨으며, 아빠가 없는 날이면 나 혼자서 맥주를 홀짝이곤 했다. 엄마는 아무 말하지 않은 채 그런 나를 지켜봤다. 뭐라고 한마디 잔소리할 법도 한데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맥주를 마실 때 옆에 함께 있어 줄 뿐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엄마와 통화를 하다 보면 무의식 중에 맥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말할 때가 있다. 엄마는 혼술 하냐고 나에게 묻는다. 당연히 혼술인 것을 뭘 새삼스레 묻나 생각하며 혼술이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내가 혼술 하는 모습을 봤으면서도 처음 알게 된 사실처럼 의아하게 물었다. 그리고 엄마는 말했다.

 알콜 중독 아니니?



 걱정이 가득 담은 질문이라기 보단 아주 쿨한 뉘앙스였다. 엄마의 질문으로 인해 잠시 내 주변의 온도가 2도 정도 내려간 느낌이었다. 시원한 엄마의 뉘앙스에 조금 당황했다. 엄마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들을 줄이야.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내가 요즘 혼서 술을 자주 마셨구나. 그리고 미안했다. 타국에서 혼자서 쓸쓸하게 술 마실 내 모습을 상상하며 걱정했을 엄마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나는 이 생각들을 뒤로한 채 담담한 답변을 했다.

이 정도로 알콜 중독이면, 이미 몇 년 전에 중독되고도 남았을 거야 라고.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엄마의 쿨한 화법을 그대로 따라 쿨한 답변을 했다. 그렇게 이 대화는 끝이 났다.

좋아서, 그리고 습관처럼. 때때로 허전해서 마셨던 맥주가 누군가에게 걱정이 될지 몰랐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라 생각했던 이 즐거움은 나만 즐거웠을 뿐 엄마에겐 그리 즐겁지도, 달갑지도 않은 행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줄일 생각은 없다. 한국에 돌아간 내년이라면 모를까, 맥주를 벗 삼아 살아가는 하루가 잘 어울리는 이 곳에서는 꾸준히 유지할 생각이다. 다만 엄마에겐 열 번 중에 네 번 정도는 비밀로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비밀로 해도 다 알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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