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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Jul 09. 2021

오늘도 한 줄의 문장은 나를 살렸다

한 줄의 문장이 가지는 힘이란.

21년 5월 31일 월요일

엄마 하노이는 언제까지 더울까? 이곳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는 날이 올까?


 아마도 2014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책을 통해 처음으로 잔잔한 마음의 안정을 찾고 내가 내려야 하는 알맞은 답을 찾았던 그때는 2014년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그 경험은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 일이었으며 어쩌면 그로 인해 글쓰기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마음이 고단하도록 힘든 날, 답이 보이지 않아 헤매는 그런 날엔 항상 가장 먼저 책을 찾았다. 그렇게 나는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고 그 가까운 친근함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책은 점점 집안의 빈 공간이 보이지 않을 만큼 쌓여만 갔다. 이사할 때마다 크나큰 곤욕을 치렀음에도 집을 가득히 차지하는 책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늘어갔다. 그것은 나의 고민의 산물이었으며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친구 이상의 존재였다.


 일을 잘하고 싶었던 어느 날은 전문적인 깊이와 성장에 대한 답을 찾았고, 어려운 인간관계에 지친 어느 날엔 매끈하고 영리한 대처 방법을 찾았다. 더불어 동질감 가득한 위로를 얻기도 했다. 때때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여행을 삶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책에서 선명한 쾌감과 만족을 얻었다. 인생이란 길 위에서 생기는 갈림길과 걸림돌을 책과 함께 지나온 나날들이다.

 


 여느 때와 같았다면 종이와 잉크 냄새가 그윽하게 풍기는 서점에 책을 만나러 갔을 오늘이다. 하지만 이곳 하노이에서 만날 수 있는 책이란 단어 하나하나를 공부하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한 페이지를 읽는데 1시간이 걸리는 그런 책만 가득하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이 낯선 땅에서 비로소 책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내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가 적힌 책만이 나에게 답을 주고 나를 다독여줄 수 있고 그것만이 나에게 의미가 있다. 아주 당연한 얘기를 당연하게 쓰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당연한 책과 서점에서는 깨닫지 못했을 사실이다.

결론은 지금 이곳에서 책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정말 다행히도 나는 이곳에 오면서 책 읽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이북(EBOOK) 리더기를 무심코 가져왔다. 이내 나의 무심결함을 칭찬했다. 때때로 별생각 없이 행동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비록 종이 한 장 한 장의 질감을 느끼며 읽을 순 없지만 찬 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니 만족하기로 했다. 한 장씩 넘겨가며 읽는 그 중독성 강한 손맛은 서울로 돌아가기 전까지 잠시 끊기로 했다.



 리더기 안에 있는 책들은 모두 읽은 책이라 새로운 책을 구매해야 했고 나의 손길은 온라인 서점으로 향했다. 어떤 책들이 있는지 스르륵거림을 반복하며 쭉 돌아봤다. 꿋꿋이 혹은 꼿꼿이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는 책도 있었고, 아는 작가의 신간도 있었다. 이런 것도 책으로 썼네?라는 생각이 드는 신박한 책도 있었다.

이 세계는 여전히 흥미로운 것이 가득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다. 여전히 깊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세계였다. 그것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없었다.


 나의 눈을 사로잡는 제목이 많았다. 예를 들어 아래의 문장과 같다.

애를 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김재식)

불안 (알랭 드 보통)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글배우)



 

 이 외에도 짧은 한 줄의 제목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겸연쩍은 표정을 짓게 하는 제목들이 많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모니터 위에 계속해서 나타났다. 사실 그것은 눈이 아닌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겠지. 마음을 제대로 들켜버린 것 같아 무안했다.


 속이 시원하다가, 가슴이 뭉클했다가, 멍하니 그저 바라봤다. 잠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나와 같은 감정으로 힘들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나는 아무것도 이상할 게 없는,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 그 다행스러운 깨달음은 잔잔한 마음을 가져다줬다. 안심했다. 이내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씩 트이며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깊고 어두운 그 서늘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 찰나의 순간, 한 줄의 문장들은 나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냈다.

오늘도 책은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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