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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Aug 02. 2021

달걀 껍질 까면서 뭐 이런 생각을 해

아마도 눈물의 달걀장 만들기

21년 8월 1일 일요일

미적지근한 날씨, 지난 새벽 비가 와서 그런지 조금 덜 더웠다


 마트에서 달걀을 사 왔다. 냉장고를 여니 똑같은 아이가 하나 더 있다. 아차 싶었다. 달걀, 대파, 양파 등 자주 먹는 재료는 습관처럼 장바구니에 담아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냉장고에 공간이 많지 않아 달걀장(계란장)을 만들어 처리하기로 했다. 한 끼 식사에 풍부함도 더할 겸.


 랜선 속 요리 고수님들의 말에 따라 달걀의 냉기가 빠지도록 실온에 놔뒀다. 마트에서 냉장 보관되어 있지 않았던지라 생각보다 빠르게 미지근해졌고 이내 냄비에 달걀 10개를 조심스럽게 담았다. 그리고 달걀이 푹 잠기도록 물을 넣어 인덕션으로 옮겼다. 식초 한 큰 술과 소금 한 큰 술을 넣고 달걀노른자가 가운데에 잘 자리 잡도록 수저로 빙빙 저어줬다.

 조금 기다리니 물은 끓기 시작했고 타이머를 맞췄다. 7분이면 반숙이 된다고 했다. 귀 아픈 알람 소리가 들리자마자 빠르게 종료 버튼을 여러 번 재차 누르고 뜨겁게 달궈진 달걀을 차가운 물에 넣었다. 차가운 물은 금세 미지근한 물로 바뀌었다. 3번 정도 차가운 물로 바꿔주니 뜨거웠던 달걀은 진정되었고 본격적으로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달걀을 모서리에 대고 빠르게 톡톡 두드려 단단한 껍질을 벗겨냈다. 스르륵 깔끔하게 이어져 벗겨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껍질은 계속 뚝뚝 끊어지며 하얀 달걀의 살결까지 뜯어내고 있었다. 다른 달걀도 상황은 같았다. 잘 까지지 않았다.


 왜였을까, 왜 잘 안 까졌을까? 남들이 하는 대로 똑같이 했는데 왜 나는 잘 안될까? 남들은 잘 해낸 것 같은데 왜 나는 안된 걸까? 뭐가 문제였을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달걀의 행보에 무수한 질문이 나를 가득 채웠다.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이 단순노동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을 줄이야.   




톡톡, 달걀 하나를 집었다.

"요즘 T의 일이 잘 되는 것 같아 보기 좋던데,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화창하게 맑은 근황을 생각하다가 에이 뭐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나 부끄러워졌다.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기 위해 잘 떼어지지 않는 껍질을 마저 조심스레 떼냈다. 하얀 살결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집중했다. 친구의 좋은 일을 온전하게 축하해 주면 될 것을 굳이 나 자신과 비교해서 나를 작게 만든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톡톡, 달걀 껍질에 두 번째 금을 냈다.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달걀을 까는 이 순간 문득 떠오른 질문에 나는 답을 할 수가 없다. 매일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막막하게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괜히 걱정만 앞서고 조급하다. 달걀을 까는 이 순간이라고 다를까, 매일 생각하던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순간에도 당연하게 답할 수 없다. 달걀 하나를 통째로 먹은 듯 답답하고 목이 멘다. 먹지도 않은 달걀을 먹은 기분을 느끼다니.


톡톡톡, 마지막 달걀 껍질이다.

"남들은 한 가지 일을 꾸준히, 묵묵하게 잘 해내던데 나는 왜 그렇지 못했을까?" 남들과 비슷하게 살고 싶었고 평범하고 싶었다. 일반적인, 보통의, 남들처럼만, 뭐 그런 거 말이다. 그러면 덜 비교하고 덜 고민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여전히 후회에 가까운 미련이 남아버렸다. 물론 다시 돌아간다고 한 들 꾸준하고 묵묵하게 한 가지 일을 할 자신도 없고 그렇게 살 생각도 없으면서 괜히 이런다. 남들과 다른 내 모습을 비난하며 실속 없이 나를 깎아내린다. 우울의 그림자가 점점 크게 짙어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냉장고도 정리할 겸 밥 한 끼 맛있게 먹자고 시작한 일에서 지나친 생각들이 나와버렸다. 알면서도 하는 어쩔 수 없는 행동이란 늘 아이러니하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 고민이란 걸 알면서도 끊어낼 수 없다. 남들은 쉽게 해낸 이 별거 아닌 달걀 껍질까기가 나는 잘 되지 않으니 속상한가 보다. 그럴 수도 있는 건데 그러려니가 안된다. 이 달걀 껍질이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작게 만드나. 달걀장을 먹을 때마다 마음이 찡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눈물의 달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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