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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Jul 15. 2021

불안정해서 회사를 그만뒀다

매일이 아무렇지 않지가 않은 사람이라서

21년 7월 14일 수요일

맑고 청아한 하늘을 보고 싶었는데 쉽사리 만나주지 않는다. 내일은 꼭 만나자.


 같은 시간에 눈을 뜨는 것을 시작으로,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고, 같은 시간에 침대에 눕는 규칙이 있는 생활을 좋아한다. 다소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이 일정한 규칙이 주는 삶의 안정감은 매우 크고 고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다. 불안정함을 타고난 나에겐 꼭 필요한 일이었다.


 최대한 나의 규칙을 어기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에겐 중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회의가 길어져 식사해야 할 시간에 하지 못하고, 방향성이 바뀌어버린 업무에 발목이 잡혀 퇴근해야 할 시간을 넘겨버릴 때마다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이것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날엔 내 안의 뜨거운 어떤 것들이 나를 괴롭혔다. 이리저리 뒤집히는 게 일상이었던 번복 가득한 회사에서 불안정함을 안정으로 바꿔가며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너만 없으면 돼. 매일 바뀌고 또 바뀌는 게 당연한 너만 없으면 돼.

이 일과 멀어지면 다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일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퇴사가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는.





 시간은 흘러 6개월이 지났다. 선명하게 그려지던 손 흔들던 그 순간이 흐릿하다. 미묘한 감정에 휩싸여 덤덤한 척하며 걸어 나왔던 회사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 차가운 이유가 까마득하게 잊혀졌다. 지나간 연애의 끝순간이 잘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회사와의 마지막 또한 그렇게 되었다.

우린 왜 헤어졌을까?


 답이라 생각했던 결정은 회피였고 핑계였고 변명이었다. 그것은 단단하지 못한 나를 지키기 위한 비겁한 방패였다. 불안정함의 이유를 일에서 찾으려고 했지만 그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번복되는 일들로 인해 깨지는 규칙이 불안정을 이끌어서? 아니, 그냥 내가 불안정해서, 단지 스스로 불안정할 뿐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부정할 것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야무지게 튼튼하지 못해서 그렇게 도망가버렸다. 무책임이다.

내 자신이 불안정해서 회사를 그만뒀다.



언제쯤 어떠한 영향력에도 쉽게 변하지 않고 부서지지 않을 수 있을까

언제쯤 불안정함을 덮어 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무뎌질 수 있을까

언제쯤 떳떳한 핑계와 변명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안정을 쫓으며 살아가는 불안정한 사람이다. 매일이 아무렇지 않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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