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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Aug 10. 2021

어쩌다 보니 장발이네요

10년 동안 유지한 단발머리는 긴 생머리가 되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제법 많이 자란 어색한 긴 머리가 얹어져 있다. 외출할 일도, 꾸밀 일도 없는 이곳에서 의도치 않게 머리를 기르게 되었다. 10년 만의 일이다.



나 = 단발머리

어린 시절부터 거의 대부분 짧고 정갈한 단발머리를 했다. 간간이 쇄골이 닿을락 말락 할 정도로 기른 적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 유지하지 못한 채 다시 귀 밑 5센티 이내의 길이로 돌아왔다. 나는 머리카락이 길게 자랄 틈을 주지 않았다. 거슬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강박과 실행력이 빠를 수밖에 없는 급한 성격 그리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모자란 인내심을 가진 탓이었을까? 3주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서 깔끔히 잘라냈다. 아마 깔끔히 관리했다는 표현이 더 잘 맞을 것 같다.


대부분의 인생의 시간 동안 나는 내 지랄 맞은 성격을 고스란히 담아낸, 나와 잘 어울리는 멀끔한 단발머리에 집착했다. 그 칼 같은 단발머리가 참 좋았다.



원래 이런 건가요?

요즘 화장실에서 흠칫 흠칫 놀라는 일이 많다.

기분 좋은 향긋한 샴푸 냄새에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풍성한 거품을 만든다. 머리 구석구석 거품을 비비적대다가 이쯤 되었다 싶으면 시원하게 씻어낸다. 샤워실 바닥을 가득 채운 거품과 함께 머리카락도 유유히 떠내려간다.

이내 수두룩하게 빠져있는 머리카락 뭉텅이가 나를 반긴다. 그리고 이 정도면 됐겠지라고 방심할 때쯤 머리를 말리며 또 한 움큼 뿜어낸다. 끝이 없는 머리카락의 향연이다.


나이의 영향인지, 나도 모를 스트레스의 영향인지. 아니면 이전과 같은 양이 빠지고 있지만 단지 길어진 머리카락이 많게 보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한 올 한 올 빠진 머리카락을 세본 적이 없는지라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머리를 길러본 경험이라도 있으면 이렇게 당황스럽지 않았을 텐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꼬맹이 시절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한껏 뿜어져 나온 머리카락을 치우는 것도 고된 일이다. 징그러울 만큼 무턱대고 빠지는 머리카락을 그대로 길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럽다. 길게 자란 머리가 잘 어울리지 않아 고민할 줄 알았던 나의 예상과 달리 나는 머리가 많이 빠진다는 이유로 갈등하고 있다. 빠지는 머리칼에 의해 망설이게 될 줄이야, 이런 이유로 고민하는 난 역시 장발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닥에 수두룩하게 널린 징글징글한 머리카락이 달갑지 않다.



가만히 있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기르고 있는 이유가 있다.

현실적으로는 이곳에서 미용실에 가는 게 쉽지 않으며 한국에서처럼 꾸미고 다니는 일이 적어서 혹은 누군가를 만날 일이 적기 때문에. 뭐 그런 간단한 이유로 머리를 기르게 되었다. 사실 방치에 가깝다. 그냥 놔뒀다. 한국이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노이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여름이 길고 겨울에도 춥지 않은 더운 나라에서 시원하게 집게핀을 꽂는 게 미덕이 아닌가? 한 올도 빼놓지 않은 채 가차 없이 집게핀으로 정리한 머리칼은 목덜미에 선선함을 가져다준다. 더불어 깔끔함도 더한다. 그동안 유지했던 단발머리와는 조금 다른 깔끔하지만 멀끔하니 됐다.


그리고 엄마는 나의 긴 머리를 좋아한다. 특히 똥머리를 좋아한다. 긴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린 내 모습을 엄마는 유독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여준지 정말 오래되었다. 언제쯤인지 더듬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의 장발은 참을성 없이 툭하면 잘라내 버리는 나에게 엄마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엄마는 딸의 머리카락이 아닌 모자란 인내심을 길러보라는 의미로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머리를 기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충실하게 가만히, 아주 가만히 있어야겠다.

가만히 얌전하게 지내다 보면 내 긴 머리를 보며 미소 지을 엄마를 볼 날이 오겠지.





자줏빛과 붉은빛 중간을 오가는 오늘의 노을색은 닮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노을이 아주 예쁘게 지던

21년 7월 27일 화요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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