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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Aug 13. 2021

내일의 해가 떠야 하는 이유

우리는 치유와 위로가 필요하다

지난 일요일부터 흐리기 시작하더니 3일 동안 해가 뜨지 않았다. 해가 뜨지 않았다기보단 구름에 가려져 있었겠지. 이렇게 내내 해가 뜨지 않은 적도 처음이라 언제까지 잿빛 날씨가 이어질지 궁금했다. 한 편으로는 조금 우울한 마음도 있었다. 이래서 영국엔 우울증 환자가 많은 것인가? 영국의 영자 곁에도 가보지 않은 내가 잠시 실감했다.



햇빛을 좋아하는 고양이

우리 집엔 올해 8살이 된 아재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이제 제법 표정도 행동도 중후한 멋이 난다.

루이는 해가 쨍하게 뜬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에어컨이 틀어져있지 않은 채 커튼이 활짝 열려있는 옆방으로 간다. 우리는 그곳은 찜질방이라 부른다. 루이는 찜질방에서 홀로 고요한 햇빛 찜질을 즐긴다. 배를 보인 채 온몸을 늘어트리고 있을 때도 있고, 벽에 바짝 붙어 잘 때도 있다. 햇빛이 너무 세다 싶으면 침대 밑으로 들어가 가장 편한 자세로 잠을 잔다. 때로는 내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있다. 이 더운 방에서 어떻게 그리도 잘 자나 새삼 대단함을 느낀다.


 며칠 해가 뜨지 않자 나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프로찜질러 루이였다. 해가 뜨지 않아 냉랭해진 찜질방을 왔다 갔다 하며 실망한 기운은 숨기지 못했다. 허탕  그의 발걸음에 속상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3일째 해가 뜨지 않자 그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 방을 한번 쳐다봤다. 번갈아보며 무언가를 원하는 눈빛과 함께 애처로운 소리를 냈다. 아마도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엄마, 나 찜질하고 싶은데 어떻게 좀 해 봐."

".. 루이야.. 엄마가 다른  해줄  있는데 해를 뜨게   없어.. 내일은  오라고 할게"

서로의 대화가 잘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그를 달랬다. 우린 같은 마음으로 내일 해가 뜨길 바랐다.


드디어 해가 떴다. 아침에도 내내 흐린 기운이 가득해서 해가 뜨지 않을  알았는데 귀하고 반가운 해가 떴다. 해가 뜨자마자 루이를 찜질방으로 보냈다. 신나게 그루밍을 하더니 이내 드러누워서  뙤약볕을 즐겼다. 오래간만에  행복해 보였다.



행복을 따라가니 찜질방이 있더라

그를 바라보며 내심 그 행복함이 궁금했던 것일까?

나도 루이 따라 햇볕 찜질을 해보기로 했다. 루이의 찜질방에서 함께 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오랜만에 찜질을 하는 행복한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거실의 테라스로 나왔다. 얇고 짧은 옷을 입은 채 테라스 의자에 앉았다. 생각 이상으로 많이 뜨겁고 더웠다. 계속 뜨겁고 계속 덥더니 땀이 나기 시작했고 한번 터진 땀은 멈추지 않았다. 땀이 잘 나지 않는 내가 이렇게 많은 땀이 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혹시 여기 찜질방인가요? 눈이 부신 뙤약볕이 만들어낸 무더운 날씨에 동남아 특유의 촉촉한 습도가 더해지니 이곳은 찜질방이었다. 찜질방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숨어있던 찜질방 하나는 루이가, 잠들어 있던 찜질방 하나는 내가 봉인 해제했다. 그의 행복을 따라가니 그 끝엔 새로운 야외 찜질방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 집은 2개의 찜질방이 생겼다.

테라스라 말하고 찜질방이라 쓴다



극한의 더움은 무념무상을 만든다

테라스에선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밝고 더욱이 달아오르는 열기에 휴대폰을 할 수가 없었다. 휴대폰도 이 더위를 실감했는지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고장 나겠다 싶어 거실에 넣어두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양쪽 귀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흔들흔들 듣는 것뿐이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으니 할 게 없었고 가만히 도로를 바라봤다. 끊임없이 차는 지나가는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여전히 야자수들은 푸른 생기를 유지한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그 특이한 생김새는 내가 어디 있는지 되뇌게 했다. 나는 이곳에 잠시 머무는 이방인이자 조금 길게 왔다가는 여행자이다. 마음이 편했다.


 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있었다. 평소와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이어질  알았는데 그저  때리고 있었다. 너무 더워서 생각 회로가 멈췄나? 나는  시간 동안 무념무상의 상태였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나는  상태가 꽤나 만족스러웠다. 나는 이방인이고 여행자 맞는데 일단 너무 덥다 더워! 생각 .



내일의 해는 뜬다

햇빛을 받으면 세로토닌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그것은 우울증을 완화하고 수면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외에도 많은 순기능이 있지만 나는 위의 두 가지 이점이면 충분하다. 잘 자고 잘 웃을 수 있으면 됐다, 더 많은 것은 바라지 않는다. 과연 햇빛의 효과를 얼마나 느끼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에이 이거 순 거짓말이네 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근데 그럼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오늘의 햇빛은 내가  살아있구나, 이렇게   쉬고 있구나를 느끼게 했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있다.  지낸다. 다음엔 어떤 것을 느낄  있을지 궁금해졌고 내일은 흐리지 않길 바란다.



해가 뜨지 않는 동안 그가 왜 그토록 아쉬워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그는 따사로운 햇볕에 치유와 위로를 받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 우리는 내일도 해가 뜨길 기다리며 잠들 것이다. 해가 뜨고 지는 일이 중요해져 버렸다. 내일의 밝은 해는 우리에게 치유와 위로를 선사하리.





여름은 언제 끝나는 것이며 장마는 지나간 것일까? 아님 지금일까?

여전히 하노이의 날씨를 종잡을 수 없는

21년 8월 11일 수요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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