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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Oct 24. 2021

이번 생은 성공한 인생이야

언제나 내편인 J 이야기

나에 대해 말하자면 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애주가이다. 술자리를 즐기는 것보다 술 마시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긴다. 누군가 함께 마시는 것은 물론이며 혼자 마시는 술도 좋아한다. 술이 없는 금요일과 토요일은 있을 수 없다. 생각만 해도 서운하다. 그녀 또한 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우리의 만남에 있어 맥주가 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맥주를 마실 수 없다면 우리는 만나지 않는다. 맥주 없는 만남은 있을 수 없다. 생각만 해도 서운하고 재미없다.


퇴근 후 J 생각이 나서 “뭐해?”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그녀는 늘 한결같은 답장을 했다. 어디선가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진. 그 술이 소주인 적은 없다. 거의 100이면 100 맥주이다. J는 애주가이다. 나와 같은. 우리의 만남에서 카페란 있을 수 없다. 낮에 만나도 맥주를 마시러 가고 밤에 만나도 맥주를 마시러 간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수다 떠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는 해장의 용도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J는 밖에 잘 나오지 않는 지독한 집순이인데 그런 그녀를 밖으로 불러내는 방법은 딱 하나. “맥주 마실래?” 이 말 한마디면 된다. 거기에 오늘 날씨와 어울리는 적당한 안주를 덧붙이면 그녀를 더 빨리 만날 수 있다. 커피 마시자고 하면 절대 나오지 않는다. 맥주 마시자고 하면 나온다. 그녀의 만능키는 맥주이다.  



평소처럼 어김없이 맥주를 한잔 두 잔 기울이며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는데 J가 이런 말을 했다.

“어른이 되어 만났다면, 우린 친구로 지낼 수 없었을 거야.”

조금 서운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나는 충분한 공감을 했다. J와 나는 성격과 성향이 많이 다른 편이다. 술잔에 담긴 술을 보고 그녀는 아직도 술이 많이 남았네 라고 말하고 나는 벌써 술이 이것밖에 안 남았네 라고 말한다. 같은 것을 바라봐도 생각하는 게 정반대다. 그런 우리는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J와 나에게 격한 공감이란 건 없다. 자연스러운 공감도 없다, 노력의 공감만 있을 뿐.

그래, J의 말이 맞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 만났다면 우리는 친구로 지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쟤는 나랑 많이 다른 사람인데 굳이 친해질 필요가 있나? 우린 입을 맞춰 없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라 치부되겠지.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씩이나 할 만큼 친구가 없지도 않을 분더러 노력을 쏟을 열정은 이미 어린 시절 다 써버리고 없다. 이왕이면 나와 닮은 사람과 더 가깝게 지내고 싶지, 서로 다른 모습을 보며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열다섯 꼬맹이 시절에 만난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우리가 그 시절에 만난 것은 운명이다.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야?”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아주 당연하고 뻔하게 J라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었고 저녁엔 누굴 만났는지, 아침에 늦잠 자서 뛰어갔는지, 그리고 조만간 월급날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 J 우리  가족여행을 함께  만큼 가깝다. 엄마는 물론이며 할머니까지 종종 그녀의 안부를 묻는다. 그녀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자 엄마가 가장  아는 친구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J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자 내가 가장  아는 친구이다. 우리 모녀는 그녀를 아끼고 좋아한다.  


J 나는 서로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술과 음식 취향이 가장  맞는다. 매운 음식을 즐기고 해산물을 좋아한다. 맥주는 우리의 소울푸드이다. 그리고 국밥을 사랑한다. 국밥과 함께 하는 반주 한잔은 당연한 일이다. 먹고 싶은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J였다. 나와 찰떡궁합 입맛을 자랑한다. 우리는 먹을 것과 마실  앞에서는 대동 단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와 나는  년에 한두 번은 함께 여행을 가는데 서로의 만족도가 높다. 보통 친구끼리 여행 가면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의 여행은 아주 평화롭다. 평화의 비결은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고 결정에 있어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것도 좋고 이것도 좋아, 뭐든 상관없어,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여행에 있어 서로 주관이 없는 편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가위바위보를 통해 결정을 내리는 일은 우리의 일상이다. 그녀와 나는 여유롭게 먹고 여유롭게 쉬자의 여행 모토 같다. 먹고 마시고 놀고 쉬는 취향이 비슷해서 언제 떠나도 부담이 없이 즐겁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같이 있으면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J와 나는 매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남자 친구도 질투할 만큼 잦은 연락을 한다. 매일같이 메시지를 주고받고도 만나면 끊이지 않게 떠들어댄다. 그게 끝이 아니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통화를 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끝이 없는 대화다. 끝없이 말해도 항상 재밌다.

기나긴 세월이 만들어준 노력의 산물인지, 타고난 비슷한 취향인지 모르겠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자주 만나고 싶고 만나면 좋고 재밌고. 그럼 된 거다. 자주 행복해야 좋은 인생이라던데 J 덕분에 자주 행복하다.



사람의 앞날은 한 치 앞도 모른다. 오늘의 남자 친구는 내일의 남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친구는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 순간의 말과 행동이 그동안 쌓아온 관계를 와장창 무너트리는 경우가 많다. 허다하게 봐왔고 속상할 만큼 겪었다. 그 후로 인간관계에 대해서 장담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조심스러웠다. 내가 확신에 차 있다고 한들 내 마음처럼 되지 않더라.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영원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날 떠나갈지라도 J만큼은 내 곁에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에게 손가락질하며 욕해도 J만큼은 내 옆에 서서 나의 편이 되어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옆에 있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성공한 인생이라고 했다. 나에겐 인생 친구가 있고 덕분에 성공한 인생이다.  


나는 J가 언제나 잘됐으면 좋겠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건강했으면 좋겠고 매일매일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 J를 생각하니 시원한 맥주 한잔이 간절하다. 지금 어디야, 맥주 한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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