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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Oct 24. 2021

너의 어둡고 깊은 동굴이 나는 좋아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K 이야기

K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푸르고 밝게 빛나는 ‘제주’이다. 그의 고향은 제주로 그의 고향은 제주로 어릴 때부터 그곳에서 살았으나 대학 입학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이다. 제주에 갈 때마다, 그리고 제주에 가고 싶을 때마다, 제주의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를 떠올렸고 늘 그랬듯이 그에게 연락했다. 언제나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겪은 많은 ‘첫’ 만남은 잊혀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게 당연하겠지.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될 뻔했다. 친구의 소개로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그를 볼 수 없었다. 서로 연락처를 알고 있었지만 그날 이후로 그와 따로 연락한 적도 없다. 그날 이후로 그는 소멸되었다. 문득 그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1-2년이 지나 그는 아마 군대에 갔을 것이다. 그가 학교를 떠나 있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학교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떠나 사회에 발을 디딛기 시작했을 무렵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우리의 타이밍은 철저하게 어긋난 타이밍이었다. 문득 그가 떠오르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며 그렇게 우린 서로에게서 잊혀지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어느 날 갑자기 머쓱한 메시지 몇 자가 도착했다. K의 문자 메시지였다. “혹시 나를 기억해?”라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먼저 연락 줘서 너무 고맙고 반갑다고 했다. 그에게 보낸 몇 문장의 말은 통상적인 말처럼 보였을지 모르겠다. 사실 그 보통의 말들 속엔 몇 마디의 문장으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의 설레고 뭉클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너무 반갑고 너무 고맙고 너무 좋고 그런 마음. 쿵쿵 뛰는 심장 또한 그에 대한 반가움을 표현했다. 그 또한 나와 같이 우리의 첫 순간을 잊지 못했던 것일까? 어떤 이유로 연락하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린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


이후 우리는 자주 연락을 했다. K는 나와 함께 밤새 술을 마시기도, 밤새 수다를 떨기도 했다. 마치 내 마음을 다 아는 것 같은 그는 나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줬다. 포근한 사람. 자꾸만 그 편안함에 더 파고들어 가고 싶어지는 그런 포근함이 있었다. 그와 있을 때면 나는 걱정이 없었고 많이 웃었다. 안락했다. 그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안정감을 주는, 편한 마음의 안식처 같은 그런 거 말이다. 그 시절 그는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날들이었다.



나에겐 남들은 알지 못하는 깊고 어두운 동굴이 있다. 보통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거나 나 자신이 싫을 때, 지난 일이 후회스러울 때 동굴에 들어가곤 한다. 대게 슬프거나 우울할 때 숨어버린다는 말이다. 어릴 적부터 우울은 나를 따라다녔다. 그 우울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는데 대부분 결핍과 외로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나의 우울을 오롯이 인정하고 때때로 사랑하기도 하지만 그 시절엔 숨기기에 급급했다. 칠흑같이 어둡고 거칠게 메마른 그 황폐한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 K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어둡고 캄캄한 ‘동굴’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병이 있었다. 나를 따라다니던 우울과 비슷했지만 그의 우울은 꽤나 강력하고 집요했다. 그를 잡아먹는 날이 많았다. 지독하게 외롭고 지독하게 쓸쓸했다. 지독하게 고독했다. 그런 그가 불편하기는커녕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처음에 ‘동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곧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응원이 었다는 것을. 그가 슬퍼하면 나도 덩달아 슬펐고 그가 기뻐하면 나는 더욱 기뻐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이 아프다고 느낀 적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로 인해 그를 더 이해할 수 있었겠지,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 거울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나 같았고 내가 그 같았다. 우린 우울이 닮아 있었다.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들 나는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은 진실된 진짜의 마음이었다.


아마 예견된 일이 었겠지, 나도 그처럼 마음에 병이 생겼다. 오랜 부정 끝에 결국은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그 순간에 생각난 건 엄마도, 아빠도, 가장 친한 친구도 아닌 그였다. 오랜만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주현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이름을 꾹 눌러 초초하게 통화연결음을 들었다. 그는 어제 연락했던 것처럼 다정하고 친숙하게 전화를 받아주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차분하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불안감에 가득 차 있던 나는 그의 목소리에 마음을 놓았다. 여전히 그는 나에게 변치 않는 존재임에 분명했다. 그는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내 휴대폰 속에 유일하게 이름 앞에 ‘우리’라는 수식어라 붙어있는 사람이다. 유일하게 그를 ‘우리’라고 칭할 수 있는 건 우리는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고 그 아픔을 우리 외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너와 나, 우리 둘만 알 수 있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라는 수식어는 그의 이름에만 붙어있을 것이다. ‘우리’라는 단어와 K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보고 싶은 마음이 참 많이 든다.

K의 다정하고 포근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전화를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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