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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Oct 24. 2021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내가 닮고 싶었던 P 이야기

나는 경계심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에게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며 끊임없이 의심한다. 상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극히 적다. 부정으로 시작한다. 상대의 단점을 찾아내고 삐뚤어지게 바라본다. 상처를 덜 받기 위한 오랜 습관 중 하나이다. 사람을 잘못 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실망이라는 감정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선 나쁜 것부터 바라보는 게 나았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오는 상실감이 싫었다. 역시 별로일 줄 알았어,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했다. 조금 애석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을 것이고 이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P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P를 처음 알게 된 건 20살이 되던 해다. 그녀는 나에게 예쁜 언니에 불과했다. 그냥 예쁜 언니였다. P는 연예인 송혜교, 문채원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얀 피부와 볼록한 이마가 유독 예쁜 사람이었다. 그녀를 떠올리면 깨끗한 하얀색이 떠오른다. 나에게 단순히 예쁜 언니였던 그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P는 내게 성격도 좋은 예쁜 언니가 되었다. 물론 그녀도 나의 부정적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 사람이 되기 위해선 꼭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니. P가 착한 척, 사람 좋은 척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의심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며 나를 실망시킬 리가 없을 것이라는 걸.



그녀와 나는 같은 과였고 대부분의 수업을 같이 들었다.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 많았고 종종 우리 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날은 J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그 친구를 시끄럽고 우악스럽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교성이 좋아 보이는 밝은 친구라고 말했다. 맞다. J는 사교성이 좋았다. 낯을 가리지 않아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곤 했다. J의 밝은 모습은 나에겐 그저 시끄럽고 우악스러울 뿐이었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 다르다니,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부정적인 시선이 먼저인 사람이라는 것을. P와 이야기할 때마다 느껴지는 시선의 차이는 나를 자꾸만 신경 쓰이게 했다.    

그녀는 나와 다르게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장점부터 바라보는 사람, 나와 반대의 시선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부정의 끝을 달렸다면 그녀는 긍정의 끝을 달렸다. 바보 같아 보일 때 정도로 사람들의 좋은 점만 바라봤다. 사람을 잘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게 이상해 보이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저러다 뒤통수 크게 맞으면 어쩌나, 이 언니가 세상 물정 모르네. 상처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의심도 하고 나쁘게도 바라보라며 훈수를 두곤 했다. 나이도 세 살이나 어린 게 그랬다. 그런 동생의 오지랖을 너그러이 예쁘게 바라봐줬다.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할 만큼 P가 좋았다.



“우와, 멋지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보고 종종 말한 적은 있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해봤을까? 손에 꼽는 일이다. 세상엔 많은 뛰어난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부럽고 멋지게 보일 뿐. 그게 다였다. 닮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닮고 싶다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P에게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나는 그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를 닮고 싶었다. 닮고 싶다는 마음이 뭔지 몰랐던 내가 그녀만큼은 닮고 싶어 했다. P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중 그녀의 선한 마음이 닮고 싶었다. 그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나도 그녀처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P는 내 주변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녀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에 대한 칭찬이 일색이며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좋아했다. P는 늘 상냥한 미소를 지었고 상대를 먼저 생각했다. 배려가 몸에 배어있었고 예쁘게 말했다. 그녀의 친절과 호의는 선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던 것이겠지. 나도 그녀처럼 선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의 선함을 닮고 싶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은 존경도, 동경도 아니다. 그녀가 내 인생의 롤모델인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비슷해지고 싶은 그런 마음. 좋아해서 닮고 싶었다.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고 싶었다.



물론 나는 P처럼 될 수 없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당연히 그녀처럼 될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부정의 끝을 달리진 않게 되었다. 끝을 달리던 내가 멈춰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영향이 컸다. 그녀처럼 장점부터 바라보려고 했고 상냥하게 말했다. 그녀를 따라 했다. 이내 곧 내 모습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완전하게 제자리로 돌아가진 않았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음에 분명했다. 그녀를 만나고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다. 그녀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보다 내가 더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했다.


닮고 싶은 마음은 맹목적으로 상대와 가까워지고 싶게 하고 어울리고 싶게 한다. 닮고 싶다는 것은 상대에게 품는 최고의 마음이자 최고의 찬사이다. 그녀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최고의 마음을 품게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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