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강, 호수 그리고 사우나까지
이번 여름 어쩌다 보니 살면서 평생 수영한 것보다 더 많이 수영을 하게 되었다. 처음 여행 준비를 할 때만 해도 가장 먼저 가는 이탈리아와 마지막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정도에서만 입을 줄 알았던 비키니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입게 되었다.
01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햇살이 뜨거웠던, 아름다운 해안 도시 트리에스테에서는 머물렀던 4일 중 3일은 친구들과 바다에 놀러 갔었다. 수영을 하지 않더라도 차를 세우고 잠시 경치를 즐기거나, 맥주 한잔을 하면서 친구를 기다리기도 했었다. 뷰가 너무너무 아름다웠던 Portopiccolo Sistiana도 기억에 많이 남지만 사실 가장 좋았던 곳은 Ausonia이다.
포르토 피콜로에 비해서 더 가족적인 분위기여서 편하기도 했고, 스테파노에게 수영하는 법을 배웠어서 기억에 남는다. (사실 배웠어도. 물에 뜨기와 배영 정도지만) 그 날 굉장히 열심히 배웠었는데. 지금은 벌써 다 까먹었다. 하하
평일 낮이었지만,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으신 분들까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었다. 그중에 페데리카 직장 동료도 만나고 동네 아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마주쳤다. 수영 후 밖에 나와 누워서 햇살을 즐기다 보니 이방인의 뫼르소와 마리가 만난 곳도 이런 곳이지 않을까 잠깐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내년이나 내후년 여름에는 알제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http://www.ausonia.trieste.it/
http://www.portopiccolosistiana.it/en/
포토 피콜로 - 굉장히 럭셔리해 보이지만, 평일에 가면 저렴하다. 친구들과 나는 셋이서 하루 종일 노는데(타월과 선베드 대여) 26유로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02 룩셈부르크 인센본
룩셈부르크에서는 정말 돈 한 푼 안 들이고 너무 아름다운 곳에서 시간을 보내었다. SURE 강 근처에 차를 세우고 돗자리와 책, 그리고 미리 사둔 맥주만 들고 호수에서 놀았다. 특이한 점은 강 바로 앞쪽에 차를 세우기 위해서는 주차비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하루 6유로) 입장료는 아니어서 그냥 주차장 앞에 아무 데나 차를 세워두고 짐을 들고 가면 무료였다. 거리도 걸어서 3분 정도? 뿐인데. 뭐지? 싶었다.
http://www.visitluxembourg.com/en/moselle-2/insenborn
03 덴마크 코펜하겐
코펜하겐에서는 원래 수영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사진을 보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꼭 가자고 졸라서 갔었다. 사실 이 날은 해가 안 나와서 좀 쌀쌀하기도 했고,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하는 날이어서 다들 별로 안 가고 싶어 했던 거 같지만... 여기를 그냥 지나치면 나중에 너무 후회할 거 같았다. 그냥 해변가에 있는 구조물인데 건축적으로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가서 자유롭게 다이빙을 하고 중간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쉴 수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나름 배워온 수영을 다 잊어먹어서 아쉬웠다. 누군가 제대로 봐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다이빙도 여러 번 하고 즐겼을 것 같은데 수영을 잘 못해서 한번 뛰어보고 포기했다.
http://www.archdaily.com/2899/kastrup-sea-bath-white-arkitekter-ab
04 핀란드 사우나
이번 랠리를 하면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순으로 북극권에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스웨덴과 노르웨이에도 사우나가 있었지만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캠프 사이트에 도착하고 나면 항상 늦은 저녁이다 보니 사우나 시간이 끝나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유럽의 최북단 노드 캅을 다녀온 후 그동안 안 쉬고 많이 달렸으니 핀란드에서는 한번 푹 쉬고 가게 캠프 사이트에 일찍 들어가자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역시 사우나의 본고장. 밤 10시까지 가능했다. 캠프 사이트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사우나를 하게 된 핀란드 친구는 대체 사우나를 그렇게 일찍 끝내는 이유가 뭐냐고 대신 궁금해해 주었다 하하 다 진짜 사우나가 아니라고
사우나 후에는 호수에 들어가 몸의 열을 식혀주는데 겨울에는 언 호수를 깨서 들어간다지만, 지금은 나름 한 여름이어서 그러진 못했다. 한국으로 치면 선선한 가을 날씨에 아름다운 북유럽 풍경에서 수영을 하니 그동안 여행하면서 쌓였던 피로가 싹 풀렸다. 북유럽으로 넘어간 후부터 쌀쌀해진 날씨와, 계속된 캠핑 생활에 몸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었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피로를 다 풀 수 있어 다행이었다.
두 번째 캠프 사이트는 조금 더 가족적인 느낌의 캠프 사이트였다. 사우나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한 시간마다 남자들만 이용하는 시간. 여자들만 이용하는 시간.으로 나누어서 사용하였다. 나름 신기했던 것은 아무리 남녀 시간이 분리되어있어도. 바로 텐트 피고 자는 곳 옆에 사우나 오두막이 있고 호수가 있는 곳인데 이 곳을 사용하는 핀란드 아주머니와 아이들은 수영복을 입지 않고 나체로 사우나로 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 호수에서 수영을 하였다.
http://www.harriniva.fi/en/accommodation/camping
사실 방문했던 모든 곳이 다 너무너무 좋았지만, 이번 여행의 참 발견은 바로 핀란드 사우나가 아닐까 싶다. 도심에 있는 사우나가 아니라, 다 진짜 북유럽 자연에서 즐긴 '진정한' 사우나여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주변에 누군가 핀란드 여행을 간다면 핀란드에서 만큼은 차를 빌려서 여행하라고 해주고 싶다. 호수가 많고 나무가 많은 나라여서 사실 어디를 정하고 찾아가지 않아도. 도로를 타고 가다 캠핑장 표식을 보고 들어가서 리셉션에 가서 사우나 있어요? 하면 바로 옆 숲과 호수에서 진짜 핀란드 사우나를 즐길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