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피봇 피봇
"서류심사에 합격하셨습니다. 0월 0일 발표심사가 진행됩니다"
기다리던 문자가 도착했다. LH에서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 지원사업 서류심사에 합격됐다는 연락이었다. '바나나 아이스크림'으로 며칠을 고민하며 작성했던 계획서였다. 지원사업 합격여부에 관계없이 사업에 대한 방향성과 내용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진행했는데, 단번에 연락이 왔다. 사실상 속마음은...'역시 이 사업 가능성이 보이는구먼' 김칫국부터 한 사발 드링킹 하고 있었다.
서류는 합격했고 발표도 얼추 준비했는데, 가장 큰 고비는 발표 장소! 무려 경상남도 진주(홍성에서 4시간)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고 통보를 받았다. (요즘 같은 시국에, IT 강국인 한국에서 10분 발표하러 4시간 넘게 운전을 해야 하다니;;) 하지만 사업비를 획득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달렸다. 4시간을~~
PT는 정확하게 10분 진행하고, 질문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나름 성공적인 발표라고 생각하고 먼길 온 김에 진주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하루가 끝났다. 그 후 마음을 졸이며 발표 통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발표심사에서 탈락하셨습니다"
문자를 보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무 놀라서 '헉'소리도 안 나왔다. 탈락의 충격으로 그 날 하루는 멍~하게 보냈다. 하루 지나고 마음의 평정을 찾은 상태에서 생각해보니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만 충만한 상태에서 사업을 준비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나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서 판매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본 적도 없고 식품업체에서 일해본 경험도 없고 해당 분야의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 치고는 갖춰져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부족함을 채워 줄 팀원도 없는 원맨팀이었다.(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설치는 나부랭이였을지도;;;)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사기를 당하기 쉽다.
나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이 남이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사기를 당했다. 욕심과 불안한 마음이 성급한 선택과 결정으로 이어졌다. 탈락 문자를 받았을 때는 충격적이고 짜증이 솟구쳤지만, 오히려 그 순간이 나 자신과 사업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UP 되어 있는 텐션을 낮추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사업 아이템 변경(피봇)이었다. 아쉽지만 1개월~2개월 동안 '바나나 아이스크림'에 집중했던 내용(브랜딩, 운영방안, 사업계획 등)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새로운 아이템에 대한 근본(기본기)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예를 들어 카페 사장이 커피에 대한 기본적 지식도 없고, 커피는 만들 줄도 모르고, 일은 알바한테 시키면 진정한 카페 사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사업을 멋과 아이템, 아이디어로 덤비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업의 기본과 근본을 익히고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채워 나가야 된다. 한 사람이 모든 분야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사업에 핵심이 되는 분야의 지식과 이해는 필요하다. 그렇게 사업에 대한 내 기준을 만들어 놔야 남과 나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