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3년차,
사회에서 아직은 '머리에 피도 안마른 피래미'이지만,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직장인 오춘기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냐?"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까?"
2달 넘게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지만,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주변에 지인들은 '평생 짊어져야 하는 질문'이라며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된 계기를 생각해보면 '성공'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이루기 앞만보고 달리다보니, 발생한 문제인 것 같았다.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르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그 기준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 '서울부부의 귀촌일기'라는 유튜브 영상을 접하게 됐다. 결혼 5년차 30대 부부가 도시생활의 막막함을 느끼고 무작정 충남 부여에 있는 시골마을로 이사를 가면서 자신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푸르다"
1화에서 시골로 이사온 부부가 내뱉은 한 마디가 마음에 확 와닿았다. 오랜기간 방치된 집을 수리하고, 집 앞 텃밭을 가꾸고, 뒷산에서 버섯을 캐는 등 자연과 동화되는 삶이 아름다워 보였다.
감사하게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지닌 여자친구 덕분에 우리는 귀농생활을 꿈꾸기 시작했는데, 그 첫 단추가 되어줄만한 일들을 알아보던 중 영등포구청에서 진행하는 '도시농부학교'를 알게됐다. 4월부터 7월까지 도시농사에 관한 이론과 실기를 배울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귀농생활을 준비할 겸, 데이트를 할 겸 함께 프로그램에 신청하게 됐다. (주변 구청을 이용하면 다양한 프로그램 혜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것과 실제로 나의 텃밭을 가꿀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였다.
봄비가 내려 미세먼지가 거친 화창한 4월 첫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에 참여하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올까 걱정했지만, 백발이 무성한 할아버지부터 원예를 좋아하는 어머님, 동내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신 아버님 등등 약 20명의 사람들이 한 기수로 함께하게 됐다. (예상대로 우리 커플이 가장 어린나이였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 겸 가볍게 밭 일구기를 진행했다.
농사의 기초는 땅에서 시작된다. 어떤 토양의 땅인지 파악하고 밭을 일구는게 좋다. 도시의 토양의 경우 산성이기 때문에 퇴비를 이용해서 땅을 정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부드러운 땅이라면 물빠짐이 좋지만, 땅이 딱딱하다면 두둑을 30cm 정도 쌓거나, 물빠짐이 좋게 밭을 일궈야 한다. 첫날 진행한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작물을 재배할 토지를 선정한다. (토지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는게 좋다. 확인하는 방법은 토지에 자란 풀을 확인하거나, 연구소에서 성분을 분석하는 방법 등이 있다.)
2. 작물을 재배할 토지에 다른 풀들이 많이 자랐다면 모두 뽑아주세요. 뽑은 풀은 버리지 말고 한 곳에 모아둔다. (재배할 토지를 표시하는 기능을 하고, 추후 작물 위에 덮어주어서 수분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종종 텃밭을 '검은 비닐'로 씌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3. 틀을 이용해서 농사짓는 토지와 사람들이 이동할 토지를 구분합니다. 초반에 땅 욕심을 부리지 말고,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만큼 농사짓는 토지를 만들어 주세요. (농사짓는 토지는 밟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3. 토지가 산성이라면 퇴비를 사용해 중성화를 시킨다. 우리는 가축분퇴비를 사용했는데, 중성화를 시키기 위해서는 약 2주간 물을 충분히 주어야 된다고 한다.
4. 퇴비를 뿌린 후 삽을 이용해서 흙과 골고루 섞어주세요. (땅을 뒤집어주면 됩니다.) 기본적으로 토지가 단단한 편이라면 두둑을 높게 쌓아주세요. 삽을 이용한 후에 호미를 사용하면 더 잘 섞입니다.
5. 저희는 땅이 부드러워서 두둑을 쌓지 않았습니다. 갈퀴를 이용해서 땅을 평평하게 만들어 준 후 뽑아놓았던 풀들을 농사짓는 토지에 덮어줍니다. 그리고 물을 뿌려줍니다.
이렇게 5평의 밭을 1시간 동알 일궜다. 오랜만에 운동을 해서인지, 이마와 등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이제 시작이지만, 무엇인가 마음속에서 뿌듯함이 밀려왔다. 도시에서 흙을 만지며 나의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이제 한번 다녀온 것으로 설레발 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심군의 팜볼루션]에서는 도시농부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고 느낀 내용을 하나하나 기록하고자 한다. 소소한 농사일기(?)로 나에 대해 돌아보고, 미래를 천천히 경작해 나가려고 한다. 오랜 겨울을 지나 단단한 흙을 뚫고 새로운 새싹이 자라나듯이, 서두를 필요 없이 차근차근히...
언젠가는 텃밭생활에 관심이 있거나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소소한 도움이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