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를 보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2살 되던 해에 할어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홀로 남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며 3남매를 키웠다. 아버지는 집안에 막내이자 가장이였다. 경제적 여유가 없던 시절 아버지만 대학에 진학했고 이는 집안에 경사였다. 아버지는 대학교 졸업 이후에 의료기기 납품 업체에 바로 취직했다.
결혼 이후 나와 동생이 세상에 나왔고, 가장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지금까지 다섯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커리어보다 가족을 위해 약 30년 넘게 일하고 있다.
가끔은 더 화목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기도 했다. 보험설계사, 초등학교 앞 분식집 아저씨. 지금 생각해보면 리스트가 컸던 결정이었고 결과는 뻔했다. 결국 아버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셨다.
내가 군대를 전역할 즘, 아버지는 큰 결심을 했다. 아버지는 기존에 커리어를 활용해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집 거실. 아버지의 첫 사무실이었다. 컴퓨터 한대가 전부였지만, 출퇴근 걱정은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 첫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회계처리, 사업자 등록, 심지어 회사 로고까지 직접 만들었다. 지금의 회사 로고는 동생이 만들었다. 동생은 알바비로 칭찬을 얻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아버지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후배 회사와 어느 회장님으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좁았지만 사무실도 얻었고, 직원도 한 명 채용했다.
나는 취직을 했고 동생은 대학교 졸업반이 됐다. 자식농사는 어느 정도 끝나가고 있었지만, 아버지 사업은 여전히 힘들었다. 사업을 키우고 싶지만, 인지도 없는 작은 회사에 지원자는 없었고 오히려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아버지에게 물품을 납품하던 해외 거래처가 국내 시장에 직접 진출한다는 것이다. 매출의 90%가 없어지고 그나마 있던 직원은 퇴사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재자리로 돌아왔다.
최근 몇일 아버지가 약주를 하는 시간이 잦으셨다. 미래와 가족에 대한 걱정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금방 회복하셨다. 다시 사무실을 구하셨고, 오늘은 아버지와 이사할 사무실을 청소했다. 사무실은 예전보다 작아졌지만, 빗질을 하는 아버지의 어깨는 어느때보다 힘찼다. 하지만 슬펐다.
아버지가 비록 IT업계 사람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있는 스타트업 시장과 비슷했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사업을 시작하고 그 안에서 우여곡절을 겪는다. 자신있는 분야로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인력난은 심각하기만 하다. 때로는 대기업 진출에 사업이 휘청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꿏꿏이 버틴다.
가족과 아직 마주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