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본능의 순간

살아있는 귀뚜라미 앞에서 드러나는 작은 포식자

by 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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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를 방문했을 때, 이미 필요한 물건은 다 준비해둔 상태였다.
더 이상 살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눈길을 끄는 곳이 있었다.
살아 있는 귀뚜라미를 판매하는 코너였다.


다른 집사분들처럼 사육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소량을 구입하기로 했다.
가장 작은 단위였던 30마리의 핀헤드.


작은 생명들이 모여 있는 투명한 용기를 고이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사육장 앞으로 다가간 순간,
마뱀이는 이미 눈치챈 듯 앞으로 나왔다.
향이라도 맡은 걸까.


평소에는 무심한 듯 구석에 숨어 있던 녀석이,
그날만큼은 앞쪽으로 나와 나를 바라봤다.
속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주인의 얼굴은 몰라보면서,
먹이의 존재만은 단번에 알아채는구나 싶었다.


귀뚜라미는 살아 있는 동안 먹여야 하기에,
그 주는 법을 고민할 새도 없이 일주일 내내
슈퍼푸드와 귀뚜라미를 번갈아 피딩했다.


문제는 내 몫이었다.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작은 귀뚜라미를
핀셋으로 집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손끝으로 잡아낸 귀뚜라미를 마뱀이 앞에 내어주는 순간,
그 눈빛을 보게 되었다.


순식간에 날카롭게 바뀐 슬릿형 눈동자.
번쩍이며 고정된 시선에는 사냥꾼의 기운이 스며 있었다.
마치 핀셋마저 물어뜯을 기세로 몸을 움츠리고 튀어 오르는 모습은,
그동안 알던 굼벵이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 작은 몸에서 사냥 본능이 깨어난 순간이었다.


슈퍼푸드 앞에서는 그렇게 까다롭게 굴던 녀석이,
귀뚜라미 앞에서는 순식간에 탐욕스러운 포식자로 변했다.


작은 먹잇감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함,
그리고 그 작은 입에 삼켜내는 힘.

나는 징그럽다고만 생각했던 귀뚜라미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


그날 이후 나는 알았다.
'다음에는 귀뚜라미를 안 줄 수 없겠구나.'

작은 포식자의 눈빛과 몸짓이 내 안의 무언가를 달궜다.

피딩의 순간은 단순히 먹이를 주는 일이 아니었다.
사냥 본능과 생명의 뜨거움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작은 사육장 안에서,
작은 도마뱀과 집사 사이에
피딩의 열기가 불타오른 일주일.


다음 귀뚜라미는 언제쯤 주어야 할까.
그렇게 나는 또다시 기다림 속으로 들어갔다.

ChatGPT Image 2025년 9월 19일 오후 02_27_21.png 도마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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