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와보니 현관 앞에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가 놓여있었다. '받는 사람 끄적이, 보낸 사람 엄마.'
집으로 들여와 뜯어보니 다름 아닌 김장김치였다.
꽁꽁 싸맨 두꺼운 비닐 속에 배추김치와 총각김치였다. 나도 모르게 열어 둔 채로 한참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미안한 마음도 들고 가슴속에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닌데 결혼한 지 12년이 넘도록 김장철에 집에 가본 기억이 없다.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어째서 한 번을 안 갔을까." 처갓집은 가까이에 있다는 핑계로 김장할 때마다 특별한 일 제외하고는 매번 가는데 말이다. "아들놈 힘들게 키워서 처갓집에 보내버렸네. 이 죽일 놈의 자식..."
오랜만에 전화 한 통화. 나나 엄마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엄마, 잘 있지요? 별일 없고요?"
"어, 왜? 애들은 잘 있지?"(나보다는 손주들부터 물어보는..)
"무슨 김치를 이리 많이 보내셨대?"
"뭐가 많아 겨울 내내 먹어야지. 지지고 볶고 먹어."
"미안해요 못 가서. 잘 먹을게요."
"오긴 뭘 와. 추운데 걱정 말어."
"엄마 별일 없지?"
"있긴 뭘 있어 잘 있어."(뚝...)
엄마와의 전화통화는 3분을 넘긴 적이 없는 것 같다. 전화만 하면 끊으려고 하니 용건만 간단히 해야 한다. 말은 많이 안 하지만 항상 본인보다는 자식걱정이 먼저인 엄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흔이 넘어도 아직까지 속 버린다고 아침 챙겨 먹으라고 하고 차조심하라고 한다. TV에서 전현무가 '자기 엄마는 아직도 육교로 건너라고 한다'는거 보니 엄마들의 마음은 다 똑같나 보다.
가끔 집에 내려가면 미안한 마음에 와이프 몰래 슬그머니 용돈을 드리곤 한다. 그런데 올라오는 날 이것저것 바리바리 쌓아주신 것들을 차에 싣고 출발하려고 할 때, 창문 너머 그 돈 그대로 차 안으로 집어던져서 나를 난감하게 만든다.
"에헤~ 엄마. 거 참~왜 돈을 주신대"(시치미 뚝..)
엄마는 묵묵 부답...
명절 때는 과일상자와 돈 봉투를 준비해서 드리면 과일상자는 다시 내차로, 돈은 그대로 손주 손녀 손에 들려있다.
"니들 돈 어디서 났어?"
"할머니가 주셨는데~"
그렇다 엄마는 할머니가 된 지 오래다. 점점 쭈글쭈글해져 가는 얼굴과 작아지는 어깨 굽어가는 허리. 점점 목소리만 들어도 할머니가 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바라만 봐도 가슴이 찡해지는 느낌..."엄마도 나를 보면 그렇겠지..."
엄마의 김장김치 맛이 점점 짜게 느껴진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 예전 같으면 짜면 짜다 싱거우면 싱겁다 얘기했겠지만, 이제 나도 철이 들어가나 보다. 이런 현실이 조금은 슬프기도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으니 인정할 건 인정하려 한다. 이제는 본인을 위해서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