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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 Sep 13. 2023

슬기로운 군대생활

사고뭉치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이야기는 허구입니다.

'전지적 심중위 시점'

'심중위 관점에서 바라보는 좌충우돌 군대이야기'



Here we go


 나는 지금 '소위'라는 다이아 계급장을 달고 상무대에 와있다. 상무대(尙武臺)란 ‘무(武)를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으로 역사가 깊은 이름이다. 따뜻한 봄이 오는 3월. 그것도 전라남도 장성이라는 남쪽에 위치한 상무대라고 하면 따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웬걸... 4월에도 눈이 내린다.


"야! 눈 온다."

"여기 북쪽 아니지?"

"아니 저주받은 땅도 아니고 미친 거 아냐?"

동기들이 수군거린다.


 상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은 마치 여자의 음부와도 같다고 한다. 많고 많은 모양 중에 왜 하필... 그러한 음지에 있으니 추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행히도 마룻바닥 내무실은 아니다. 4인 1실, 2층 침대를 두 개 쓰는데 내 자리는 1층이다. 우리 방은 유호열, 인용팔, 남구식이라는 동기와 함께 쓰고 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금방 친해졌고, 나름 괜찮은 놈들 같다. 호열이는 내 위층인데 계속해서 떠들어댄다. 입을 1분도 쉬어본 적이 없는 놈이다. 이제는 내 집처럼 편안하다.


 자대에 배치될 사단별로 장교 후보생을 모아 구대를 형성한다. 여기 온 지 한 달째. 일주일이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우리 구대 또라이로 통했다.


 모든 동기들이 내 이름 석자를 알고 있다. 같은 방 호열이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나 같은 또라이가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었는데 그게 바로 호열이었다. 코드가 잘 맞아서 항상 붙어 다니고 있다.


 첫날부터 둘이 소주 댓 병을 나발 불고 다음날 훈련을 째버렸다. 달콤한 단잠을 깨우는 건 담배 한 보루를 피다 만 걸걸한 목소리 구대장이었다.


구: "귀관"(걸걸해도 이렇게 걸걸한 목소리는)

구: "귀관들"

구: "귀관! 귀관!"

구: "안 일어나? 어라."

구: "술 쳐 먹었어? 미친 거 아냐?"

구: "이런 확~씨"


 우리 둘은 구대장한테 끌려갔다. 고드름이 어는 날씨에 줄줄 땀이 흘렀다. 입소 첫날이 전역하는 날이 될 줄 알았다. 마음 같아서는 때려치운다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을 때, 옆에 호열이를 보니 웃겨서 말을 못 했다.


백: "하하"(읍.. 나도 모르게)

구: "어라? 웃어?"

구: "네가 진정 미쳤구나?"

구: "야! 야! 엎어!!"

구: "아 열받아! 뭐 이런 미친놈들이 있어!!"


 그날 어쩌면 퇴소를 할 뻔했다. 아니 퇴소를 당할뻔했다. 반나절 대가리를 박았더니 머리에 이미 헬멧을 쓴 것처럼 아무 감각이 없어졌다. 그리고는 '술을 몰래 마시지 맙시다' 글씨를 대문짝 만하게 써서 호열이와 나는 복도에 반나절을 서있었다.


 오고 가는 동기들이 키득대며 웃어댔고, 우리는 그렇게 구대에서 이름을 가장 먼저 알렸다. 다행히도 퇴소는 안 당했다.


 구대에는 구대장이라는 직책의 육군 중위가 대장노릇을 한다. 우리 구대장은 허구한 날 술냄새를 풍기면서 출근한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술 먹다 걸렸어도 눈감아준 건지 아니면 그때도 술이 안 깨서 눈감아준 건지 잘 모르겠다. 나처럼 군기가 제대로 빠져 보이지만 의리는 있어 보인다.


 본인이나 똑바로 할 것이지 매일 똑바로 하라고 한다. 구대장처럼만 안 하면 군생활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물론 나는 이미 구대장을 능가했지만...


내일은 사격이 있는 날이다. 나는 호열이와 내기했다.


백: "야. 총으로 새 맞추기 하자"

호: "뭐? 새?"

호: "총소리에 다 날아갈걸"

백: "맨 먼저 쏴야지 인마"

호: "맞추면?"

백: "술 먹기. 하하"

호: "미쳤구나. 또 걸리면 끝이야~ 우리!"

백: "싫으면 말고"


날이 밝았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사격장으로 이동했다. 훈련장을 갈 때면 운전병이 노래를 틀어준다. 나는 이때가 정말 좋았다.


호: "모든 걸 다 주니까 떠난다는 그 여자~ 내 맘하나 몰라주는 그 여자~"(호열 노래 중)

백: "시끄러워 인마. 노래감상 중 안 보이냐?"

호: "오 또라이~ 누구 생각나냐?"

호: "누군데? 누구?"

호: "첫사랑? 걔? 헤헤"

백: "아 진짜. 절로가 비켜 비켜"

가끔은 그녀가 생각난다.


성가신 호열이는 노래를 곧잘 한다. 중학교 때부터 비보이 활동을 했으며, 춤뿐 아니라 가요제에 나가서 입상할 정도로 한때는 가수 지망생이었다. 오디션에 연신 낙방하다가 군대 때문에 꿈을 접었다고 한다.


백: "아 씨. 너 때문에 노래도 못 들었잖아~"

노래 5곡정도 들으니 사격장이다.


"1사로~~"(1조 입장)

"2사로~~"(2조 입장)


백: "야. 나랑 바꾸자"

나는 2사로였는데 1사로에 있는 동기와 자리를 바꿨다.


호: "야. 또라이! 진짜 맞추게?"

백: "조용히 해 인마. 새가 있어야 맞추지"


통제관이 확성기를 켜고 안내방송을 하자 새들이 날아간다.

백: "아 씨..(속삭임)"


통: "소총 들어" "탄창 결합" "탄피바지 결합" "탄알 1발 장전" "조정간 단발"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개시라고 말하려던 순간 바로 이런 걸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던가. 꿩 한 마리가 과녁 옆에 앉는다.


통: "개시~"(하자마자)


'빵~~~'

나는 속으로 '나이스'를 연신 외치고 있을 때쯤. 통제관이 놀라서 눈이 토끼눈이 되었다.


통: "사격중지!!"

통: "누구야! 누구!"

통: "소총 놔. 무릎 앉아"

통: "어떤 xx야?"

백: "죄송합니다! 안경을 안 가져와서 안보였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실수로 보일만했다. 내가 총구를 틀은 것도 아니고 아주 살짝 빗나가도 꿩을 맞출 수 있는 근거리였다.


통: "진짜야?"

백: "넵!!"

통: "사실이야?"

백: "넵!!!"

통: "확실해?"

백: "넵!!!!"

통: "좋아. 진정성 있는 눈빛 좋았어. 위치로"

백: "넵!!!!!"


 나는 눈이 안 보여서 그랬다고 끝까지 잡아 땠다. 솔직히 사격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너무 갔다 싶었다. 하지만 다행이다. 조교가 꿩을 가져오는데 머리통이 날아갔다. 제대로 헤드샷이다. 오늘 밤 술안주로 딱이었는데 못 가져가서 아쉽다.


 사격을 마치고 내려오는 동기들마다 깔깔대며 웃는다.

"역시 또라이. 최고~"

"흐리멍덩한 눈빛 좋았어~ 하하"


 막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기분이 좋았다.

백: "야. 오늘 안주 뭐야? 새로운 거 없냐?"

호: "글쎄. 일단 가보고 헤헤"


 내무실에 돌아와 오늘 밤 우리는 진짜로 몰래 한잔 하기로 했다.

백: "야. 몇  남았냐?"

호: "오늘은 걸리면 우리 진짜 끝인 거 알지? 걱정 마. 너 먹고 죽을 만큼은 있어. 히히"


 우리는 물병에 소주를 담아놓고, 안주는 PX에서 사다 놓은 참치캔과 소시지였다. 점호를 마치고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우리는 연신 "캬~ 좋다" 소리를 내며 함께 숨죽여 술을 마셨다. 취기가 조금 올라올 때쯤 호열이가 묻는다.


호: "백호야. 넌 왜 장교 할 생각 했냐?"

호: "너는 어떤 놈이었어?"


 나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나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누가 물어도 그냥 씹어버리기 일쑤였다. 마음이 닫힌 지 오래였고, 이렇게 마음을 털고 이야기하는 친구도 정말 오랜만이라 적응이 안 된다.


백: "나...?"

백: "내가 어떤 놈이냐고...?"


 오늘따라 유난히도 집에 혼자 계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동안에 살아왔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백: "글쎄... 내가 어떤 놈이었을까... 나는 말이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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