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소위'라는 다이아 계급장을 달고 상무대에 와있다. 상무대(尙武臺)란 ‘무(武)를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으로 역사가 깊은 이름이다. 따뜻한 봄이 오는 3월. 그것도 전라남도 장성이라는 남쪽에 위치한 상무대라고 하면 따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웬걸... 4월에도 눈이 내린다.
"야! 눈 온다."
"여기 북쪽 아니지?"
"아니 저주받은 땅도 아니고 미친 거 아냐?"
동기들이 수군거린다.
상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은 마치 여자의 음부와도 같다고 한다. 많고 많은 모양 중에 왜 하필... 그러한 음지에 있으니 추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행히도 마룻바닥 내무실은 아니다. 4인 1실, 2층 침대를 두 개 쓰는데 내 자리는 1층이다. 우리 방은 유호열, 인용팔, 남구식이라는 동기와 함께 쓰고 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금방 친해졌고, 나름 괜찮은 놈들 같다. 호열이는 내 위층인데 계속해서 떠들어댄다. 입을 1분도 쉬어본 적이 없는 놈이다. 이제는 내 집처럼 편안하다.
자대에 배치될 사단별로 장교 후보생을 모아 구대를 형성한다. 여기 온 지 한 달째. 일주일이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우리 구대 또라이로 통했다.
모든 동기들이 내 이름 석자를 알고 있다. 같은 방 호열이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나 같은 또라이가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었는데 그게 바로 호열이었다. 코드가 잘 맞아서 항상 붙어 다니고 있다.
첫날부터 둘이 소주 댓 병을 나발 불고 다음날 훈련을 째버렸다. 달콤한 단잠을 깨우는 건 담배 한 보루를 피다 만 걸걸한 목소리 구대장이었다.
구: "귀관"(걸걸해도 이렇게 걸걸한 목소리는)
구: "귀관들"
구: "귀관! 귀관!"
구: "안 일어나? 어라."
구: "술 쳐 먹었어? 미친 거 아냐?"
구: "이런 확~씨"
우리 둘은 구대장한테 끌려갔다. 고드름이 어는 날씨에 줄줄 땀이 흘렀다. 입소 첫날이 전역하는 날이 될 줄 알았다. 마음 같아서는 때려치운다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을 때, 옆에 호열이를 보니 웃겨서 말을 못 했다.
백: "하하"(읍.. 나도 모르게)
구: "어라? 웃어?"
구:"네가 진정 미쳤구나?"
구: "야! 야! 엎어!!"
구: "아 열받아! 뭐 이런 미친놈들이 있어!!"
그날 어쩌면 퇴소를 할 뻔했다. 아니 퇴소를 당할뻔했다. 반나절 대가리를 박았더니 머리에 이미 헬멧을 쓴 것처럼 아무 감각이 없어졌다. 그리고는 '술을 몰래마시지 맙시다' 글씨를 대문짝 만하게 써서 호열이와 나는 복도에 반나절을 서있었다.
오고 가는 동기들이 키득대며 웃어댔고, 우리는 그렇게 구대에서 이름을 가장 먼저 알렸다. 다행히도 퇴소는 안 당했다.
구대에는 구대장이라는 직책의 육군 중위가 대장노릇을 한다. 우리 구대장은 허구한 날 술냄새를 풍기면서 출근한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술 먹다 걸렸어도 눈감아준 건지 아니면 그때도 술이 안 깨서 눈감아준 건지 잘 모르겠다. 나처럼 군기가 제대로 빠져 보이지만 의리는 있어 보인다.
본인이나 똑바로 할 것이지 매일 똑바로 하라고 한다. 구대장처럼만 안 하면 군생활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물론 나는 이미 구대장을 능가했지만...
내일은 사격이 있는 날이다. 나는 호열이와 내기했다.
백: "야. 총으로 새 맞추기 하자"
호: "뭐? 새?"
호: "총소리에 다 날아갈걸"
백: "맨 먼저 쏴야지 인마"
호: "맞추면?"
백: "술 먹기. 하하"
호: "미쳤구나. 또 걸리면 끝이야~ 우리!"
백: "싫으면 말고"
날이 밝았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사격장으로 이동했다. 훈련장을 갈 때면 운전병이 노래를 틀어준다. 나는 이때가 정말 좋았다.
호: "모든 걸 다 주니까 떠난다는 그 여자~ 내 맘하나 몰라주는 그 여자~"(호열 노래 중)
백: "시끄러워 인마. 노래감상 중 안 보이냐?"
호: "오 또라이~ 누구 생각나냐?"
호: "누군데? 누구?"
호: "첫사랑? 걔? 헤헤"
백: "아 진짜. 절로가 비켜 비켜"
가끔은 그녀가 생각난다.
성가신 호열이는 노래를 곧잘 한다. 중학교 때부터 비보이 활동을 했으며, 춤뿐 아니라 가요제에 나가서 입상할 정도로 한때는 가수 지망생이었다. 오디션에 연신 낙방하다가 군대 때문에 꿈을 접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