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인재. 책임. 희생자 사연 보도
올해 봄, 가뭄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은 완전히 물바다에 빠진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에 큰물이 지면 날림으로 공사해놓은 다리(새마을 다리라고 불렀다)들이 사라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고등학교 때 큰비가 온 뒤 몇몇 학생들이 사라진 다리 대신 먼 길을 돌고 돌아 한낮이 지나서야 학교에 나타난 적도 있었다. 산림이 울창해지면서 예전에 볼 수 없던 초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것과 달리 수해는 그래도 조금은 관리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예상을 벗어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고, 또 직간접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언론도 마찬가지다. 수해 현장에 나가 있는 방송기자들이 정말 고생하고 있다. 어떤 기자를 보면 이재민이 따로 없는 행색이라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수해 취재 경험은 별로 없다. 잘해야 잠수교 정도 나가서 중계차 탔던 기억이 나는데, 어쩌면 기억이 유실된 것일 수도. 아, 이렇게 쓰다 보니 태풍과 호우 때 원고가 다 날아간 장면도 살짝 기억이... 역시 사람 기억이란 믿을 게 못 된다는 생각.
이번에 수해 보도를 보면서 몇 가지 단편적인 생각이 들었는데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몇 가지만 써놓으려고 한다.
먼저 인재냐 아니냐를 따지는 보도. 사실 어떤 재난이든 파고 들어가면 어딘가 예방을 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이나 계기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은 누군가의 책임 문제로 돌아간다. 그렇게 보면 인재 아닌 것이 없고, 결국은 모든 것이 정도의 문제일 터.
오늘 인터뷰에서 본 어느 재난 전문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데, 방재 체계에 대한 검토에 앞서 수사를 통해 책임이 있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에 주력하는 것은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당연히 사람이 죽고 심각한 피해가 났으니 수사를 하겠지만, 재난이 발생하면 제도적이고 체계적인 검토와 대책 마련에 앞서 수사본부부터 꾸리는 관습은 좀 고쳐야 하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적정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데, 우선 민심 수습용으로 속죄양을 찾는 건 항상 좀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 언론도 관행적으로 인재냐, 아니냐를 따지고 당연한 수순으로 수사 보도로 이어지는데, 이게 맞는 접근 방식인지 좀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
다음으로 희생자 사연. 공동체적 관점에서 희생자가 누군가의 가족이고, 우리의 동료라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일깨우고, 그저 몇 명 사망, 몇 명 부상이라는 숫자로 치환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되새기게 해주는 게 이런 보도다. 그런데 자칫 감상으로 흐르다 보면 좀 어이없는 멘트들이 나온다. 이렇게 착실한 사람이어서 더 주변을 안타깝게 한다는 식의 보도는 ‘그럼 그렇게 착실하지 않은 사람은 죽어도 덜 안타깝다는 건가?’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효심 깊은 아들 딸을 강조하는 것도 그렇다. 너무 삐딱하게 보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기자나 데스크가 너무 그 스토리를 얘기 되게 쓰는 데 집중하다 보면 사람의 가치를 비교하고, 뭔가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이건 재난을 보는 접근법의 차이일 수는 있겠지만, 어떤 상황을 보다 객관적인 정보와 분석으로 재구성하고, 교훈을 찾는 쪽으로 보도를 하는 건 어떨까. 희생자가 발생하면 그들의 스토리를 앞다퉈 발굴해 기사를 쓰는 것, 그것을 위해 현장 기자들은 안 그래도 황망한 유가족들을 상대로 사연 취재를 해야 하고, 적지 않은 기자들은 이런 기사를 위한 상가 취재에 얽힌 힘들었던 사연들을 갖고 있다. 간혹 기다렸다는 듯이 얘기를 잘 해주는 분들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그 사연이 어느 정도나 사실일까, 이런 건 검증 안 하고 그냥 얘기해주는 대로 받아써도 되나, 고민이라는 말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사안을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게 하나의 문화나 장르 같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그런 감성적 스토리 듣고 나면 기분이 안 좋기도 하고, 똑같은 내용을 다루더라도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기사로서의 거리감을 갖고 접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