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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논란이 된 수사 보도

고 이선균 씨 수사 보도와 관련해

이달 초에, “다시 생각하는 ‘언론의 품격’과 사적 영역 보도”라는 글을 <기자협회보>에 썼었다. 품격을 지향한다면 법적 하한선보다는 더 높은 곳을 지향하려고 해야 한다고 적었다. 평소 공익을 내세우고, 온갖 고상한 명분을 내세우다가도 선정적 호기심에 영합하는 보도를 거침없이 하는 잘못된 관행을 지적한 글이었다. 그때 염두에 뒀던 게 두 가지 사안이었는데 하나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함정 취재였고 다른 하나가 이선균 씨 관련 보도, 그 중에서도 통화 녹음을 비롯한 내밀한 사적 영역을 보도한 것이었다. 


앞의 사례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일련의 매체들이 김건희 씨를 선정적 보도의 대상으로 삼은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정파성 말이다. 김건희 씨에 대한,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공격을 위해서는 뭐든 해도 된다는 접근 태도이다. 어떤 언론학자는 방송에 나와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결과가 중요하다고 했다. 윤 정부 공격에만 도움이 된다면(결과) 함정 취재를 하든 몰카를 하든(과정) 상관없다는 논리다. 학자들도 이런 식으로 말할진대 일반인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함정 취재를 포함한 어떤 선정적, 비윤리적 접근을 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을 공격하는 데 유용하면 박수를 보낸다. 정말 언론 윤리를 얘기한다면, 결과가 아무리 쓸만하고 마음에 들더라도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그 부분은 지적해야 한다. 역지사지해서, 언론이 내편에 대해서도 그런 식으로 취재해도 박수를 칠 것인지 생각해보면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이선균 씨 보도에 대해서는 어제 오늘 몇몇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선균 씨와 같은 셀럽은 사실 사적 영역의 보호가 쉽지 않다. 워낙 전면적인 노출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 독일식으로 얘기하자면 절대적 보호 영역이 있다는 말이다. 이번 전화 통화가 대표적이라고 본다. 만약 대화 내용에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한 부분만 보도한다면 그나마 명분은 있다. 하지만 누구를 좋아한다는 식의 말을 방송으로 공개하는 것은 어떤 필요와 명분이 있는 걸까.      


나는 범죄 보도에 무조건 부정적인 사람들과는 생각이 다르다. 범죄는 사생활이 아니다. 사생활이라면 공권력을 발동해 들춰낼 수 없다. 법을 지키거나 어기는 것은 공적 사회생활이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그리고 1990년대 후반까지의 한국) 등에서는 범죄 혐의자의 이름은 모두 공개하고 사진을 보도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범죄 보도는 우리 사회에 어떤 위험 요소, 문제적 요소가 있는지를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알리고 그에 대한 공권력 행사가 적절하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무죄추정원칙은 형사사법절차에서 미리 유죄로 단정하지 말고(무죄일 수도 있다고 보고) 방어권을 인정해주라는 것이다. 때문에 무죄추정을 하더라도 수사와 재판에 필요하면 사람을 구속한다. 무죄추정원칙이 있으니 범죄 관련 보도를 하면 안 된다는 분들은 무죄추정을 하는 사람을 왜 공권력을 동원해서 구속하고 재판하는지 설명해보기 바란다.      


대신에 언론의 범죄 관련 보도는 신중해야 한다. 경찰이나 검찰이 무슨 혐의를 두고 수사를 한다고 해서 단정적으로 사실 확인이 다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 안 된다. 구속해서 재판하던 사람 중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고, 심지어 유죄 확정판결이 났던 사람이 재심을 통해 억울한 피해자였음이 드러나기도 한다. 언론이, 스스로 취재한 내용을 과신하거나, 수사기관이 두고 있는 혐의를 마치 사실 확인이 된 것처럼 다루면 안 된다. 범죄를 보도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유죄로 단정하듯 보도하고 조사 받고 있는 자체를 갖고 망신주기로 흐르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보도는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 과정을 전하는 것이어야지 그 자체가 마치 처벌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중하게 보도하던 언론사들도 다른 곳들이 달려들어 경쟁이 붙으면 그때부터는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본다. 이런 걸 고쳐야 한다. 품위 있는, 명색이 전통 언론이라면. 덧붙여서, 같은 맥락에서 수사나 재판 받는 사람이 출석할 때 사실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느냐’는 식으로 다그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그리고 전통 언론이라면 이럴 때 유튜브에서는 더하다는 식의 핑계는 적절치 않다. 유튜브에서 뭐가 떠돌든, 사실 확인을 하고 보도 가치를 따지는 것은 전통 언론의 몫이다. 유튜브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척하면서 유튜브에 떠도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건 전통 언론이다. 그때까지 유튜브에 뭐가 있는 줄도 몰랐던 사람들은 물론 이미 유튜브에서 그런 내용을 접했던 사람들도 그런 내용이 제법 논의할 만한 것인 줄 받아들이게 된다. 유튜브 걱정하지 말고 전통 언론은 자기들부터 잘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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