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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명품백 보도에 대해

취재 방법을 둘러싼 윤리적 쟁점 정리 메모

<서울의소리>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선물 보도에 대해서 몇 마디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몇 군데 신문에서 전화를 받고 제법 길게 얘기를 했었지만 한두 마디씩 잘려서 실리는 바람에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데 나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 프로그램에 전화로 10여 분간 인터뷰를 했는데, 그런데도 결국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는 못한 느낌. 그래서 몇 가지 포인트별로 정리를 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먼저 이번 취재 방법의 적절성


한국 언론은 윤리 논란으로 적지 않은 홍역을 치렀다. 지금 한국의 젊은 기자들은 신분을 밝히지 않고 하는 기만 취재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언론재단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젊은 기자들을 만나보면 다들 언론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더 윤리적으로 행동하려고 고민을 한다. 일반 영업점에 기자 신분을 숨기고 뭘 물어보는 것도 안 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도 있다. 결국 무죄 판결이 확정됐지만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경우 공익적 목적으로 취재를 하더라도 누군가 위협으로 느낄 수도 있는 편지를 보내는 행위가 엄청난 윤리적 위반 사례로 다뤄졌고, 해당 기자는 그 일로 200일이 넘게 구속돼 있었다. 1심 판사는 무죄 선고를 하면서도 언론윤리 위반이라고 훈계까지 했다. 


이런 상태에서 취재원에게 명품백 사진을 보내고, 그걸 들고 가서 만나서 전달하는 과정을 마치 첩보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손목시계에 장착된 카메라로 촬영해 보도하는 것이 통상적으로 언론윤리적으로 허용되는 취재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게 통상적으로 허용된다면 우리는 단단히 안전벨트를 매야 할 것이다. 사방에서 함정취재가 난무하고, 이른바 고위직에 있는 분들은 사람들 만나거나 돌아다닐 때 몰래카메라는 물론 작업 여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모든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들, 인허가권을 가진 공무원, 검사와 경찰 등 수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모두 뇌물도 줘보고, 이른바 김영란법을 위반하는지도 테스트해보고... 문제는 그런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는 하다. 부정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직자 등에게 부당한 금품을 제의하거나 제공하는 것도 불법이고, 뇌물을 제의하는 것도 불법이다. 이게 공익적인 취재니까 괜찮다고 봐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통화를 하는 언론사 기자나 PD들에게 거꾸로 물어본 것이 있다. 여러분의 회사에서는 이런 식의 함정 취재를 하느냐, 그리고 해도 되느냐. 다들 안 된다고 했다. 물론 MBC가 제보자 지모 씨와 채널A 이동재 기자에게 사용한 방법은 이번 함정취재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는 갖고 있지 않은 로비 리스트인가를 갖고 있는 것처럼, 검찰과 뭔가 거래를 성사시켜서 가져오면 그것을 건네줄 수 있는 것처럼 속여서 특종을 노리는 기자가 그물에서 빠져나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 당시에도 취재윤리적 문제는 채널A 쪽보다 MBC 쪽에서 더 논란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든 MBC 취재 관련 규정 중에는 “위장·잠입 취재 과정에서 어떤 경우라도 불법 행위에 가담하거나, 불법 행위를 하도록 유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이번 <서울의소리> 취재는 이런 기준에 위반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물론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해 대부분의 언론 관련 규범에는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누군가를 속이거나 심지어 함정에 빠뜨리는 방법으로 공익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철학자 칸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 그럼 절대로 이런 취재는 하면 안 될까?


아니다. 예외 없는 규정이 어디 있을까. 물론 바로 위에서 언급한 MBC 취재 관련 규정(제목이 아마 ‘비밀 촬영 및 위장·잠입 취재’였던 것으로 기억)은 ‘어떤 경우라도’ 불법 행위에 가담하거나 불법 행위를 하도록 유도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지만, 고도의 공익적 필요가 있을 경우, 그리고 긴급성이 필요한 경우, 마지막으로 다른 대안이 없을 경우는 함정 취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고도의 공익적 필요가 있을 경우’에 이번 일이 해당할까? 이건 사실 관계에 대한 판단이 필요할 것이고, 사람마다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 취재를 하려고 전화했던 기자나 PD들이 자신들의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취재할 사안은 아니었다고 답한 것에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일반적인 언론사라면 하지 않을 취재.


어떤 경우에 이런 취재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봤다. 예를 들어 김건희 여사가 이렇게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계통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심지어 부적절한 고가의 선물을 챙기는 문제가 있어서 그것을 취재하기 위해 접근해서 선물까지 줘보고, 그걸 받으면 그에 대한 후속 조치까지 보완적으로 취재해서 보도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그런 문제가 포착되어서 접근해 들어간 것이라면, 그런 애초의 문제 자체에 대한 취재가 좀 더 필요하다. 그냥 우연히 그 전에 갔을 때 의심스러운 말을 하나 들었다는 식으로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취재에 들어가게 되는 동기와 배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도했어야 할 것 같다. 그런 것 없이는 그냥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아서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를 보는 것이고, 그런 걸 취재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 심지어 함정취재를 BBC에서도 한다는데?


그렇다. BBC에 이런 식의 취재를 종종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IOC 위원도 걸렸고, 국회의원도 걸렸다. 미국에서도 이런 식의 함정취재가 곧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좋은 보도라고 하지는 않는다. 시카고 선 타임스라고 하는 언론사는 아예 술집을 하나 빌려서 넉 달 동안 운영하면서 공무원들의 뇌물 수수 등을 보도해서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적이 있다. 그 보도가 퓰리처상 후보로 올라갔는데 결국 못 받았다. 이유는 취재 방법이 정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취재를 외국에서 한다고 우리도 배워올 방법이라고 주장할 일은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리가 가진 언론윤리법제와 미국이나 영국 등이 가진 게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해도 되는 것들 중에 한국에서는 안 되는 것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실명 보도를 못 한다. 어지간히 고위직이 아니고는 실명 보도에는 손해배상의 위험이 따른다. 그냥 이름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사진 보도? 못한다. 초상권에 사생활침해 등 인격권 침해가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이다. 오죽 사회 분위기가 익명성을 추구하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판결문조차 이름을 ○○○으로 지워서 공개를 할까. 우리는 범죄 보도를 할 때 실명을 못 쓴다. 무죄추정원칙 때문이라고 하는데 똑같이 그런 원칙 적용하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실명 보도를 다 한다. 범죄 피해자 이름은 당연히 못 쓴다. 참사가 발생해도 우리는 모자이크 해야 하고, 익명으로 보도한다.


가령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이 미국에서 논란이 될 수 있을까? 전혀 없다. 한국에서도 무죄였을 뿐만 아니라 정권의 실세와 관련한 비리 의혹을 취재해보려고 수감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며 조금 위협적인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기자가 구속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타사 기자의 그런 보도 방식을 고발한다며 함정 취재를 하는 것은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물론 아직도 당시 이동재와 한동훈 검사장이 여권 실세를 겁박하기 위한 어떤 기획을 했다고 믿고 있는 분들에게는 이런 얘기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윤리적으로 매우 엄격한 한국 언론에 대한 사회적 요구 속에서 미국이나 영국 언론도 함정취재 하니까 우리도 괜찮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지는 더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번 취재도 공익성 있는 것이니 아무 문제 없다는 분들은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가 과했다고 주장한 분들이나, 채널A 이동재 기자의 취재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그래서 언론의 기득권을 통제하고 더욱 윤리적 보도를 하게 만들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비롯해서 더욱 언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분들을 비판해야 마땅하다. 만약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는 지나쳤고, 채널A 이동재 기자 취재도 문제가 많고(하지만 그걸 고발하기 위한 함정취재는 괜찮고), 언론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하지만 이번과 같은 공익적인 고발을 위한 함정취재는 괜찮다는 분은 똑같은 취재를 김정숙 여사나 권양숙 여사에 대해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 그럼 이번 사건의 결과물, 즉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을 받은 것은 보도하면 안 되는 일일까?


이번 취재에 문제가 많다는 점 때문에 그로 인해 드러난 일은 입에 올리면 안 되는 일이 된 것이라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이른바 ‘독수독과’ 이론을 주장하는 모양이다. 독이 든 나무의 과일에도 독이 있으니 못 먹는다는 말인데, 위법수집 증거 배제, 즉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재판에서 사용하면 안 된다는 법칙이다. 형사사법 원칙의 하나다. 나는 개인적으로 형사사법 원칙이나 행정기관에 적용되는 규정을 언론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글이 길어지니 논의 생략. 어떻든 재판에 증거로 쓰는 것도 아니고, 기왕에 알려진 김건희 여사 선물 문제가 사회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통령 부인이 부적절하게 사람들을 접촉하고 부적절한 선물을 받은 것, 그에 대한 법적 정치적 책임을 다루는 것이어야지 그가 어떻게 말도 안 되는 낚시에 걸렸든지를 손목시계 카메라 영상과 함께 줄줄줄 보여주는 것은 선정적 보도 태도일 뿐이다. 마치 지난번 김건희 여사의 7시간 녹취록을 뚜렷한 사실적 쟁점도 없이 그대로 틀어댔던 것이나 마찬가지의 선정적 행태와 다를 게 없다. 


문제적 취재 방법의 결과이긴 하지만 공적 관심사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보도는 물론 논의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더구나 지금 국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본다. 이른바 전통 매체들이 이런 사안을 전통 매체답게 보도하는 나름의 방법을 확립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유튜브 시대라지만 유튜브 언론들처럼 선정적으로 정신없이 보도하거나, 그렇다고 민감한 사안은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는 식의 양자 택일형은 곤란해 보인다. 공적 관심사로서 다루는 적절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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