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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의 ‘공영방송 전쟁’ 관련 칼럼에 대해

(2023. 1. 18. 경향신문 칼럼을 읽고)

* 여기까지가 내가 이전에 썼던 글이다. 앞으로는 기본적으로 새로 쓴 글을 올릴 생각. 1월 19일에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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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강준만 교수가 공영방송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고 있다. 항상 예민한 문제를 주저없이 파헤치는 용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식인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기성의 질서와 인식에 의문을 가져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진영적 인식에 사로잡혀 선택적으로만 작동한다면 온전한 지식인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집단이 요구하는 방향에 맞춰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사안을 바라보면서 현실적인 제반 상황을 잘 판별해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기존에 사람들이 붙여놓은 표지를 전제로 개념적으로, 또는 이념적으로 판단해버린다. 이렇게 하면 개별적 사실 판단을 할 필요도 없고 자기가 속한 집단이 바라는 것에서 멀어질 위험에 처하지도 않는다. 주변을 돌아보면 적지 않은 학자, 언론인들이 지금의 언론 관련 이슈를 그런 식으로 다룬다. 그에 비해 강준만 교수의 글은 항상 사안을 있는 대로 보라는 자극을 준다.


언론 관련 이슈를 현실적인 제반 상황을 잘 판별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사람들이 붙여놓은 표지를 전제로 개념적, 이념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떤 걸까? 지금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표지는 대체로 명쾌하다. 민주당은 언론자유를 보호하는 쪽이고 국민의힘은 반대 쪽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언론자유를 보호하는 쪽이었고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언론을 탄압하는 쪽이다. 이렇게 선을 그어 놓고 그 기준에 맞춰 판단을 하면 굳이 구체적인 사안의 전개나 사실관계 등을 파악해볼 필요도 없고, 개별적인 생각을 해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민주당은 집권 기간 내내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를 손도 대지 않았고 ‘가짜뉴스와의 전쟁’ 운운하며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 보도를 공격하는 데 열을 올렸다. 급기야 언론에 대한 징벌배상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서서 언론노조와 기자협회와 갈등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징벌적 손배제 도입에 반대하며 언론자유를 주창했고, 언론노조와도 소통했다. 그 사이 집권한 국민의힘은 자신에게 줄곧 비판적인 공영방송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언론노조와도 갈등 국면으로 재진입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에 비판적인 MBC 출입기자의 전용기 탑승도 막고, 새 대통령의 언론관에 다소 유보적 태도를 보이던 언론노조도 대통령을 정면 비판한다. 야당이 된 민주당은 이제야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고치겠다고 나서고, 국민의힘은 반대한다. 


특이한 것은 민주당이 언론중재법을 개정해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려던 그 국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국면에서 민주당은 대체로 언론자유를 옹호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국민의힘은 언론에 완력을 행사하려는 듯한 외관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걸핏하면 정교하지 못한 거친 언사로 언론을 장악하고 싶은 속내를 표출했다. SNU 팩트체크센터에 대한 황당무계한 공세가 대표적이었고, 문재인 대통령 집권 때처럼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을 바꾸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불만 표시도 이어졌다. 반대로 민주당은 징벌적 손배제로 언론을 통제하려던 시기에도 겉으로는 언론 피해 구제 강화 같은 명분을 내걸고 인권 옹호자를 자처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민주당은 친 언론적이고 국민의힘은 반언론적인 것처럼 인식한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기의 전과는 이런 인식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작동했다.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많은 사람들은 줄곧 공정성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공영방송 TBS에 대한 서울시의 문제제기를 오로지 방송탄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중재법 국면에서 친 민주당 행보로 거의 발언권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민언련도 다시 목소리를 높여 현 정부와 집권 세력을 언론장악 세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소란 속에서 우리가 진짜 이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되기를 바란다면 조금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은 강준만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공영방송을 놓고 벌이는 전쟁 상황 같다. 그냥 한쪽이 완전히 이기는 쪽으로 몰고 갈 수가 없는 일이다. 이 정부 내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싸움만 하다가 끝난다면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일 뿐이다. 현재의 구도가 이대로 굳어진다면 집권 세력으로서는 제도를 바꿀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민주당은 마치 정말 언론자유의 수호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다가 아마도 다음에 집권하면 또 태도를 바꾸고 징벌배상제 타령을 할 수 있다.


다시 강준만 교수의 글로 돌아가 보자. 언론노조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쪽의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언론노조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로잡지 않은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지금 저 법안이 나온 것도 그나마 언론노조가 압박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언론노조도 더 이상 국민의힘을 단순히 언론장악 집단이라는 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언론중재법 국면에서 당시 언론노조와 국민의힘 사이의 소통이 대표적이다. 다른 분은 몰라도 전주혜, 최형두 의원은 이런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권 이후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거친 입이 자초한 언론노조의 비판을 친민주당의 징표라고 보는 것은 과하지 않을까 싶다.


핵심적으로 언론노조, 방송 유관단체, 관련 학계가 여야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지금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국회 5명, 시청자위 4명, 학회 6명, 직능단체 6명으로 한 것이 한쪽으로 쏠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나도 지금처럼 언론이 이런 상황에 처하도록 실질적으로 별 역할도 하지 못한 학계가 6명의 이사진을 추천하는 부분이나, 사실상 양대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중심이 되는 직능단체가 6명의 이사진을 추천하는 것은 충분히 다시 논의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보다 더 나은 방안은 또 무엇일까 하는 점일 듯하다. 지금 어떻든 민주당은 언론노조 등의 의견을 들어 지금의 개선안을 내놓았다. 언론노조로 대표되는 노조는 아예 추천권자에서 빠졌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민의힘에서 좀 더 구체적인 안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지금의 공영방송 체제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또 얼마나 명분이 있을까. 강준만 교수의 지적처럼 국민의힘을 언론장악 세력으로 매도해서는 이 논의가 진전될 수도 없을 것이라는 점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국민의힘도 불필요하게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언론 자유와는 척이 진 사람들처럼 행동하지는 않아야 한다. 엉뚱하게 팩트체크센터를 공격하는 것처럼 행동으로 집단 전체가 언론장악을 못해 안달인 사람들인 것처럼 행동해서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이제는 국민의힘도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안을 제시할 차례다. 구체적인 안이 제시되면 여야와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논의를 통해 제대로 된 방안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118030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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