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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재 전 기자 2심 판결문 정리

판결문에 나타난 사실관계를 찬찬히 살펴보아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 대한 2심 판결문을 읽었다. 판결문이 그렇게 무지 긴 것은 아닌데, 어떻든 요약 겸 정리를 해봤다. 이것도 좀 길지만 다 읽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서 정리한다.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내가 읽기 편하게 고친 것이다.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기로 하면서 이 사건은 이렇게 법적으로 매듭이 지어졌다.      


이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특검법을 발의했다고 한다. 내 마음에 드는 결론이 만들어질 때까지 사안을 끌고 가보고 싶겠지만 더더욱 이 사건의 바닥에 깔린 어두운 그림자만 짙어지게 만들 뿐이다. 한 젊은 기자의 과욕과 판단 착오로 시작된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진 것을 그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이동재 기자는 자신의 무리했던 취재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했었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6개월 가까이 수감 생활을 해야 할 정도의 잘못이었는지. 판결문에 드러난 사실관계를 좀 차분하게 읽고, 지금이라도 이 사안에 대한 생각을 한번 다시 정리해보면 좋겠다.     


<판결문 요약>     

1심은 이동재 등이 이철을 압박하기 위해 한 각각의 행동들 즉, 5회에 걸친 편지 발송, 3차에 걸친 제보자X 만남을 하나씩 개별적으로 평가해서 강요미수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했음. 개별적으로 강요미수죄 성립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인정할 수 없다고 보고 무죄 선고. 검찰은 항소를 하면서, 모두 8회에 걸친 이런 압박 행위는 불가분적으로 연결된 행위이므로 이것을 개별적으로 판단한 1심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주장.     


2심은 이런 검찰의 항소 이유를 받아들임. 8회에 걸친 이동재 등의 행위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불가분적인 행위이므로 공소사실에 포함된 각 행위를 전체적으로 평가하여 강요미수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맞는다고 밝힘(검찰 승. 판결문에는 쓰지도 못한 ‘언론윤리 위반은 명확’ 운운하면서 이동재 등을 훈계했던 1심 판사 패).      


공소사실 인정 여부는 피해자의 사후적, 주관적 인식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이런 각 행위를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협박으로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므로 각각의 행위별로 판단하지 않고 각 행위를 전체적으로 평가한다고 해서 방어권 행사에 불이익을 주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 (중요한 부분은 강요미수 성립 여부가 피해자가 사후적으로, 주관적으로 이러이러하게 느꼈다고 해서 그냥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구체적 해악의 고지로 볼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 이건 1심과 동일)     


공소사실은 피고인들이 직접 피해자를 상대로 해악을 가하겠다고 고지한 것이 아니라 ‘검찰을 통해’ 어떤 해악을 가하겠다고 고지했다는 것. 따라서 공소사실이 인정되려면 피고인들의 행동을 통해 자신들이 검찰 수사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것으로 믿게 하는 언동을 했거나, 그로 인해 검찰 수사가 피고인들의 의사에 좌우될 수 있는 것으로 피해자가 인식했음이 증명되어야. 하지만 그런 증명이 부족함.     


5차에 걸친 서신 어디에도 피해자가 취재에 협조하지 않으면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불이익을 입게 하겠다고 말했다거나, 혹은 통상적인 법조기자와 검찰 관계자 사이의 통상적인 친분 이상으로 이동재가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의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이게 만들 만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음. 피해자나 그 가족이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향수 후사 전망을 부정적으로 과장하여 언급한 것으로 보일 뿐이고 이것이 피고인이 검찰 수사에 영향력이 있었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은 아님.     


피고인이 제보자X에게 자신의 검찰 간부와의 친분을 언급한 것은 피해자의 선처를 담보해 줄 만한 검찰 관계자와의 친분이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제보자X의 말에 응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법조 출입기자로서 검찰 관계자와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보일 뿐 이것이 이동재가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가지는 것으로 믿게 할 정도의 언동이라고 볼 수 없음. ‘안 하면 그냥 죽어요’ 같은 표현도 제보자X가 의구심을 표시하자 취재 협조를 설득하는 동시에 선처 가능성을 강하게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로 해악의 고지로 한 말이라고 보기 어려움.     


오히려 4차 서신에서는 자신은 로비스트가 아니다, 나는 정상적인 범주 안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다 등의 말을 했음. 마지막 3차 만남에서 제보자X는 피고인들이 선처를 주선할 역량을 의심하자 녹취록, 녹취 파일 등을 제시하였으나, 피고인들이 검찰에 선처를 주선할 역량이 있는지도 선뜻 믿지 못했던 제보자X에게 검찰에 선처를 주선하는 정도를 넘어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믿게 할 만한 것은 아님. (계속 이동재를 의심하며 뭔가 더 가져오라고 압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 이렇게 실제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의심하던 사람들이 이동재가 검찰을 동원해 해악을 가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말)     


제보자X는 2차 만남과 3차 만남에서 자신이 알지도 못하고 이철은 존재를 부정하는 로비 자료 등이 있다고 말하면서 검찰 관계자를 통해 선처를 주선해 준다면 이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였고, 이 자료를 얻기 위해 검찰과의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녹취 등을 제시한 행위가 해악의 고지로 보기는 어려움.(이동재에게 줄 수 있다고 말한 리스트는 제보자X가 그냥 지어낸 말이라는 뜻)     


정작 피해자인 이철은 변호인을 통해 2차 만남과 관련해서는 ‘엄청난 내용이 많다, 언론 보도를 보면 곧 알게 될 것이다’는 언급 정도만을 전해 들었는데, 제보자X와 이동재와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전혀 듣지 못했음. 결국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보건대 피고인들이 검찰 수사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믿게 할 정도의 언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제보자X를 만나서 한 말들이 해악의 고지로 볼 수 없고, 더구나 그 내용마저 피해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므로 발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을 고지했다고 볼 수 없음.      


이철은 과도한 검찰 수사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하나 그런 공포감이 생긴 경위에 대해 ‘검찰과 교감이 없었더라도 의혹 제기 자체로 공포심을 느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등 경위를 납득하기 어려움. 피고인들의 행위를 검찰 수사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믿게 할 정도의 언동으로 볼 수 없는 한 비록 반복적으로 수사 상황 등을 전달하면서 심리적인 압박을 가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구체적 해악의 고지로 볼 수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     


피고인의 언동은 취재에 응하는 대가로 검찰과의 비공식적인 플리바게닝을 주선해 주겠다는 취지로 봄이 상당하고, 실제로 녹취록 제시 등으로 검찰 관계자와의 단순한 친분을 넘어 상대로 하여금 검찰과의 유착을 의심케 할 만한 언동으로 볼 여지도 있음. 하지만 이런 행동은 이런 비공식적 플리바게닝을 주선해주는 대가로 자신들의 목표인 취재 정보를 얻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제보자X는 그런 로비자료가 실재하는 것처럼 말하며 이를 매개로 검찰과의 연결 가능성을 확인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임. 피고인들이 이런 제안이 무산될 경우 수사상 불이익을 입게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취재에 협조하면 선처를 주선하겠다는 제안이 피해자에게 불리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해악의 고지로 볼 수 없음. (이 부분이 좀 특이한데, 결국은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는 제안인데 이것이 어떻게 해악의 고지가 될 수 있느냐는 말.)     


피고인들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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