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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ure Oct 18. 2019

찌질한 연애의 기억

찌질했던 그 시절을 기억해줄 사람에 대한 연민

아주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가끔 헤어진 연인에게 헤어진 이유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녀가 그리워서는 아니고 풀지 못한 문제의 정답지를 보는 느낌이랄까?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에 정답은 모르지만 그 시절 내가 얼마나 찌질했는지 반성해 본다.


그녀는 군대 후배 소개로 만났다. 나보다 3살 어렸다. 그 시절 생각해 보면  나도 어렸지만 그녀는 훨씬 더 어린 나이였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당시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맘 편히 백수생활을 하며 그녀와  만났다. 그녀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매일 밤 12시 가까이 끝났다. 남는 게 시간이 이라 난 그 퇴근에 맞춰 그녀를 데리러 갔다. 시작하는 연인에게 늦은 밤에 할 수 있는 데이트는 많지 않았다. 호수공원 산책, 반대 호수 산책. 밤에 공원은 조용했고 공원은 두 남녀에게 관대했다.


익숙함을 핑계로 방치했다. 

시간이 흘러 나도 취직을 했고, 그녀도 밤에 일하는 학원에서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로 이직을 했다. 80만원 받는 인턴 주제에 스포츠카나 타고 다니고, 미래에 대한 계획은 하나도 없었다. 호기롭게 데이트 비용을 내면서도 그 카드값은 당당히 엄마에게 요구했다. 일찍 독립한 여자 친구의 눈에는 한심한 한량이었다. 주말은 회사일로 바빴고, 나는 그렇게 그녀를 방치했다. 뜸해지는 전화통화와 간단한 안부로 그녀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눈치 없는 나는 그녀의 생각은 모르고 철없는 미래에 대한 말만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응, 잘 될 거야.”

“네가 하는 일 응원할게”


그때는 그것이 신호였는지 몰랐다.


배추라는 친구를 만나

태생적으로 외로움을 덜 타는 성격이라 여자 친구의 외로움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다. 타지에서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 이유였는지 여자 친구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다. 나는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지만, 여자 친구가 원하면 해주는 착한 남자 친구 코스프레를 했다. 충무로 애완동물 샵에서 20만 원을 지불하고 코카스파니엘을 새끼를 데려왔다. 어딘가 허약해 보이지만 순하고 착해 보이는 게 자기랑 처지가 비슷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온 느낌이 들었다. 집에 데려온 첫날 배춧잎을 먹는다 해서 배추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래도 배추가 여자 친구에게 많은 힘이 되어 주었던 것 같았다. 예전보다 더 활기차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좀 약하게 태어난 아이는 잔병이 많았다. 배추가 아프다고, 좀 이상한 거 같다고 밤에 전화 오는 일이 많았졌다. 나도 애완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어 특별히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고, 동물병원에 가보라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번 동네병원을 들렀다. 결국 <장염>이라 판정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장염이 새끼 강아지한테 얼마나 치명적인 병인지 몰랐다.  치료비가 30만원 정도 나온다고 했고, 내가 든 생각은 20만원에 구입한 강아지에 30만원의 치료비는 산술적 계산으로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충무로 애견샵에 문의해 지금 상황을 설명하니, 자신들이 치료해 주겠다고 했고, 함박눈 오는 겨울날 여자 친구는 아픈 배추를 충무로 애견샵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3일 후 애견샵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여자 친구분이 강아지를 보겠다고 왔는데요."

"네. 그래요? 근데 왜요?"

"그게...그러니까..사실 죽었거든요. 지금 그걸 여자 친구분에게 말씀드리면 충격받으실 거 같아서요."


약 1주일 정도 치료기간을 예상했는데, 여자 친구가 잠시 배추를 보러 샵에 들렀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죽은 배추를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달려가 상황을 정리해 보니 샵에서는 처음부터 치료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치료하는 것보다 다른 강아지로 주는 게 더 싸게 든다는 논리였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담담했고 당당했다. 샵에서는 다른 강아지로 바로 데려라고 호의인 양 말했고 우리는 강하게 항의했지만, 그들은 늘 있는 일처럼 태연했다.

그날도 함박눈이 펑펑 내렸고, 여자 친구는 배추를 그리워하며 흐느꼈다.


"여기로 오는 날도 배추는 엄마 힘들까 봐 조용히 움직이지도 않고 얼마나 얌전했는데.. 그리고 아직 어린것이 화장실도 금방 가리고, 얼마나 조용했는데. 그렇게 착한 아이였는데.."


나는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때 깨달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배추는 여자 친구에게  큰 의미였고, 생명이었다. 내가 생명에게 몹쓸 짓을 한 것에 후회했다. 얼마가 들건 살렸어야 하는 생명이었다. 미안하다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 슬픔으로,  더 이상 여자 친구의 눈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여자 친구는 이별을 통보했다. 반박할 말도 없었고 이유를 물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둘의 사랑의 기한이 다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이렇게 행동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순간순간의 지점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도 알고 있다. 후회도 인생의 일부로 받아 드려야 한다. 지나간 연인에 대한 미련도 아니고, 과거에 대한 향수도 아니고 그저 찌질했던  시절을 기억해줄 사람에 대한 연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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