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국립현대미술관 산책, 뭉크를 찾아서
오슬로 국립미술관은 뭉크의 '절규'를 소장하고 있다. 뭉크미술관이 있지만, 뭉크의 '절규'는 국립미술관에 가야 볼 수 있다. 뭉크의 작품외에도 스웨덴 화가 얀손, 하랄드 솔베르크, 크리스티안 달, 크리스티안 크로그의 작가들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지만, 자국민이 아닌 다음 저 멀리 한국에 오슬로까지 왔다면, 결국 기승전 '뭉크'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는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작가 이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실존의 고통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뭉크의 작품은 유독 우울하고 고통과 죽음의 주제가 많다. 이유는 그의 어린시절 가득 채운 죽음의 공포가 평생의 불안으로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뭉크의 작품을 보기 위해 오슬로 국립미술관을 찾았지만, 뭉크의 작품외에도 다양한 작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한 벽면에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액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형태의 전시를 좋아한다. 하나하나의 작품 보다는 전체를 이루는 모양과 컷으로 나뉜것 같은 형태가 모여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것 같았다. 그림이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뭉크의 절규의 노르웨이 원제는 'Skrik' 영어로 'Scream' 번역 되었고, 한글은 '절규'로 번한되었다. 그러나 절규는 너무 함축적이고 절제된 비명으러, 뭉크의 의도와는 좀 맞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그 근거를 보자면, 뭉크의 일기에 표현한 내용을 인용하자면
'하늘이 핏빛으로 변하고 나는 멈춰 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불타는 구름이 피와 칼과 같은 형태로 짙은 푸른색 피오르와 도시 위에 걸려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 친구들은 걸었다. 불안으로 몸을 떨며 그 순간 거대한 무한한 비명이 자연을 꿰뚫는 것을 느꼈다.'
<절규>와 같은 함축적 표현 보다는 원초적인 비명에 가까운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다양한 형태로 접할 수 있어 새로움 보다는 신비함이 더 컸다. 피빛하늘과 노르웨이의 자연의 피오르드를 형상하며, 항상 우울감에 빠진 주인공, 그러나 그를 도울 수 없는 친구. 뭉크의 정신적 괴로움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고 현대인들의 내면을 잘 표현하고 공감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랑받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절규외 에도 사춘기, 아픈아이, 여동생 잉게르 작품도 볼 수 있다. 가운데 그림인 <아픈아이>는 그가 다섯살인해에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후 누나 소피에도 그가 14세때 결핵으로 죽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누나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다. 어린시절의 비극적인 현실이 그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로 반영되었다. 입센의 작품 <유령> 속 오스왈드처럼 자기도 또 자신의 죽은 가족 의자에 않아 갈구 하게 될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고통과 죽음이 주제였고, 매일 죽음과 함께 살았다 라고 고백할 만큼 깊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마돈나 는 마리아와 같은 표현이다. 서양에서 성스로운 존재로 표현되는 존재를 뭉크는 관능의 여신으로 표현했다. 다른 의미로는 죽음의 여신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어두움 속에 붉은 색 후광은 작품의 섹슈얼리티가 극대화된 표현으로 보였다. 꿈결같은 몽환속에 좌측 하단에 기묘한 해골같기도 정자 같기도 한 형상이 신비로움을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