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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 Jul 17. 2022

과거의 하루 기록 (10)

2021년 07월 06일의 기록

"사랑"


일본의 소설가 하세 세이슈가 쓴『소년과 개』라는 책을 읽다 말고, 갑작스레 펜을 들게 되었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곁을 지키는 떠돌이 개를 중심으로 개가 베푸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춰 쓰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끝까지 전부 읽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감상은 그렇다. 자세히 느끼고 생각이 든 것은 나중에 독후감으로 쓰면 되니 크게 상관은 없다. 지금은 어찌 되었든 잡문을 쓰는 시간이다. 개가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사랑을 느끼다 보니 순간적으로 떠오른 주제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있던 일들과 더불어서 늘 할 이야기가 많은 소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지루하고 길어지지 않도록 잘 써 봐야겠다.


오늘, 중대장님과 면담을 잠시 동안 했었다. 되게 유쾌하게 해 주셔서 좋았지만 속으로는 조금 뜨끔 했을지도 모른다. "나이 스물둘이나 돼서 꿈이 없는 게 자랑이다." 마음에 비수가 꽂히는 한마디였다. 전공이 그림이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썩 좋아하지도 않고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던 나에게 참 난감하게 다가왔다. 아주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예전부터 그냥 혼자 간직했던 '좋은 남편, 좋은 아빠'라는 꿈도 분명 있었지만 순간 아차 싶었다. 이 모든 일의 전제가 되는, 나는 내 반려자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하다못해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마땅히 없다. 한 때 있었다가 없어진 것 일지도 모르지만.


과거부터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늘 이상했던 것 같다. 사랑받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사치이고 과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또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줄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그토록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멋있고 대단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규칙과 나 스스로의 틀을 매우 중요시하는 나에게 모든 사람들은 대개 이 틀에 부합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나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고 그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면서 틀을 깨려고 한 누군가가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처음에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 나한테 부모님조차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사실 부모님은 아들의 속이 이토록 꼬여있는 줄 몰라서 안 하신 것일지도 모른다.) 균열이 가기 시작한 탑은 무게 중심을 잃고 무너지기 쉽다. 그런 무너지기 직전의 탑과 같던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나타나니 처음으로 진짜 말도 못 할 정도로 행복했던 것 같다. 매일매일 행복에 취한 느낌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에는 다소 낯부끄럽지만, 처음으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느낀 듯했다.


하지만 운명은 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노리고 들어온다. 운명이 사람이라면 멀리서 정신을 다시 차리라고 내게 손짓을 하는 듯 보였다. 누구나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행복을 누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결국 지금의 소강상태로 접어들게 됐다. 돌고 돌아서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불행을 타고났고,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을 잘 몰라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공감해주지도 못하던 사내는 잠시 '좋음'을 맛보다가 다시 끌려가게 됐다.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기도는 늘 너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하거라."


한창 힘들던 학창 시절의 내게, 고해성사에서 마주했던 신부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이다. 그러나 남들에 비해서 조금은 뒤틀린 가치관을 지니고 있던 이 소년은 이 일을 도저히 해낼 수 없었고, 자라서도 여전했다. 남들과 조금은 달라서 남들은 이해도 잘해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지금의 나는 결국 우주 속에 있는 수많은 별의 바다에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하나의 혜성에 지나지 않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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