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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 Aug 07. 2022

과거의 하루 기록 (12)

2021년 07월 10일의 기록

"벚꽃"


봄이 왔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 기분 좋게 내리는 봄비도 그렇고, 싱그럽게 돋아나는 라임 그린색의 나뭇잎, 기분 좋게 선선한 봄바람도 그렇다. 그중에서도 봄이 가장 절정에 다다랐을 때, 떼 지어서 피어나는 벚꽃이 있다. 벚꽃은 특이하게도 단기간에 몰아서 피어나고 확 져버린다. 그래서 벚꽃을 국화로 정한 일본은 한국인의 국민성을 확 뜨거워졌다가 한순간에 식는 냄비에 비유하듯이, 벚꽃 같은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봄의 대표하기도 하는 이 벚꽃은 대충 내 생일 전후로 피어나서 내가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는 꽃이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에 집 뒤편의 산책로에서 벚꽃이 피어 있을 때 나 혼자 새벽에 일어나서 구경하러 간 이유도 그래서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은 벚꽃이 피어있을 때가 아닌, 지기 시작할 때이다. 마치 눈이 내리듯 쏟아지는 벚꽃은 한순간을 위해 피어났다가 찬란한 모습을 뒤로한 채, 흩어져 버리는 그 쓸쓸함이 있다고 느껴진다.


사람도 벚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순간을 빛나기 위해 뼈가 빠지도록 움직이고 바라던 그 순간에 눈부시게 빛이 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그런 중요한 순간들에 실제로 빛이 나고, 그 빛이 계속 비쳐 계속 빛나는 별과 같은 사람들은 기억하게 된다. 그 반면에 그런 순간들에 빛을 잃고 져버리는 벚꽃 같은 일들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최근 들어서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한순간 빛을 발하고 사라진 벚꽃 같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 쏟은 마음이 결국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인어공주처럼, 내 마음은 한순간 벚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났다가 허무할 정도로 흔적도 없이 흩어져버렸다.


그러나 벚꽃은 1년마다 그 찬란한 모습을 되찾고 다시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듯이, 언젠가는 나도 다시 그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시기가 돌아올 것이라고만 생각하자. 물론 1년마다 돌아오는 벚꽃처럼 금방이 될지, 십수 년의 긴 세월을 땅에서 인고해야 하는 매미처럼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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