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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 Jul 05. 2022

과거의 하루 기록 (2)

2021년 06월 28일의 기록

"역"


언제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하철 타는 것을 다른 대중교통 수단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선호했던 것 같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매번 문이 여닫힐 때마다 오르내리는, 개개인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그 수많은 인파에 섞여있을 때 느껴지는 묘하지만 기분 좋은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 그 무리에 섞여 나도 남들에게 모두 보이지만 신경은 쓰이지 않는 또 하나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될 때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하철 자체도 충분히 매력 있지만, 그 지하철의 시발점이 되는 '역'이란 공간도 묘하지만 기분 좋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역의 가장 큰 장점은 열린 공간에 많은 사람을 가진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열린 공간에 사람은 많고, 지하철 자체의 소음도 있기 때문에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상대에게 가까워지고 집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설렌다거나 상대에 대해 더 관심이 생기고 더 알고 싶어 지게 되는 경험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그리 느꼈었다.


물론, 역의 기능은 언제까지나 사람들을 오르내리게 하는 정해진 장소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을 태우고 내리게 하는 역의 기능 자체도 무시할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되려 그 기능이 앞서 말했던 장점과는 다른 면에서 더 큰 두각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역에서 내려 만나는 과정 혹은 역에 들어가 헤어지는 과정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서 다른 감정을 전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날 때 반갑고 헤어질 때는 아쉬울 것이다. 반대로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만날 때는 모종의 껄끄러움이나 떠나보낼 때 속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일부러 도착한 열차를 떠나보래서라도 누군가와 안 헤어지려고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려고 한 경험이 있었다.


'역'은 그 자체로 나름의 기묘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사소하지만 되게 이상한 경험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역 안 건너편에 있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와 힘들었던 경험도 있었고, 재수하던 시절에는 매번 오가면서 같이 걷던 점차 친해지면서 지금까지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역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더불어 제법 신기한 일들을 많이 만들어줬다. 나중의 일이기는 하지만, 나중에라도 내가 갈 지금껏 가보지 못했던 역들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제법 기대가 된다.




그리고 지금, 2022년 6월 2일의 첨언


어딘가를 향할 때, 꼭 목적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목적지가 없어도 갈 수 있는 곳은 충분히 많다고 생각한다. 목적지가 명확하면 분명 빠르게 갈 수 있기야 하겠지만, 삶은 빨리 움직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빠르지 않게 움직이더라도, 얻어 갈 수 있는 것들은 분명 존재한다.


지하철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분명 모두가 임의의 목적지를 가지고 가고 있지만, 내가 그곳을 가는 방법과 당장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생각하는 방법은 다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시간을 적게 걸려서 가는 것이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환승을 적게 해서 피로감을 줄이는 게 1순위가 될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사람이 적은 쪽으로 조금은 돌아서 가더라도 편하게 가는 것을 선호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정답이 없는 것이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런 곳에서 비롯된다. 모두 같은 지하철을 타고 있지만, '정답'을 가지고 어딘가를 향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자기가 선호하는 방식에 맞춰서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 정해진 시간대 안에 도착만 하면 문제가 될 것은 하나도 없다.


흔히 살면서, 우리는 모두 어떤 문제를 당면했을 때 어떤 명확한 해결책이 있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효율적이거나 빠른 해답이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그렇게 되게끔 정해진 것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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