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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 Jul 06. 2022

하루 기록 (5)

2022년 06월 25일에, 2022년 03월 31일의 기록에 이어서

"10년 뒤의 나에게"


꽤 최근에 유행했었던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을 남들보다 한 박자 늦게 보았다. 한참 소셜 미디어에서 떠들썩할 때 안 보고 지금 보는 이유는 역시 유행 타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내 성격 탓이 제일 클 것이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더 새기 전에 본론을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왜 갑자기 드라마로 운을 뗐느냐 하면, 드라마에서 나왔던 한 물음 때문이다. 드라마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국연수(김다미)와 최웅(최우식)에게 다큐멘터리 PD가 물었다. "10년 뒤에는 무얼 하고 있을 것 같나요?" 하는 썩 참신하지는 않은 그런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흔하다 못해 뻔하기까지 한 이런 질문에 막상 나복 답변하라고 한다면 나는 도저히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 기회를 계기로 생각해보고 싶었다. 잠시 동안 내 생각만이라도 물어볼 생각이다. 10년 뒤의 나에게.


우선 10년 뒤라고 하면 2032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까마득한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을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뤄낸 삶을 살고 있을까. 반대로 그것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버리고 내버려 두고 왔을까. 막상 어떤 어른이 되어있을까 생각해보면 상상하기 힘들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1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그렸을까. 10년 전, 한국 나이로 13살이었던 초등학교 6학년의 나는 아무래도 10년 뒤의 미래를 걱정할 만큼의 사려 깊은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그때의 순간 하나하나가 소중했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런 어린아이였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은 원래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갔을 무렵이라, 친구들이랑 떨어지게 되는 것이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놀려고 했던 그런 시기다. 10년 뒤의 미래를 생각하기엔 생각 없이 지내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사실 10년이란 시간이 터무니없이 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껏해야 내년, 내후년의 일들만 상상할 수 있을 뿐이지 10년처럼 긴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을 떠올리기란 애당초에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내 생각과 예상대로 흘러갈 수도 있겠다만 그렇지 않은 편이 더 현실적이다. 10년 전에 내가 지금을 상상하기 힘들듯이, 나이가 먹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대충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더라면, 중학교 시절의 내가 생각한 것이 있기는 하다. 어릴 때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주위의 의견을 반영해서 28살쯤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그런 어렴풋한 그림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그런 생각이었다. 22살에 군대를 들어와, 23살에 제대하면 24살에 복학하고 최소 26살은 되어야 비로소 졸업을 할 수 있다. 취업 준비를 바로 하지 않고 대학원을 다닌다거나 하는 이상, 28살은 사회초년생도 아닌 아직 할 게 너무나도 많은 청년으로 살고 있을 시기다.


막연한 고민이나, 막연한 꿈. 누구나 그려보다가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조차 멈추게 되는 것에는 현실의 벽이 큰 원인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좋은 미래를 꿈꾸지만, 그 미래를 현실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과 같은 일이다. 누구나 10년 뒤의 자랑스러운 내 모습을 그릴 수 있지만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그 모습과는 다른 내가 되어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중에 취직할 때 자신의 대학 전공과 무관한 직종에 취직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오히려 내가 실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생각을 제대로 못 하게끔 나 자신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은 아닐까.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분명 실망감도 커질 테니, 처음부터 그런 고민을 못 한다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늘 낙관적인 미래만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에게"


사실 미래의 나 자신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메시지를 남기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내가 남겨놓은 메시지에 동의를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야 어느 정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옛날의 나는 얼마나 생각이 없었던 것이기에 이런 터무니없는 말들만 남긴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될 뿐이다.


그래서 사실 생각해보면, 미래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나에게 말을 남길 바에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을 오늘 하루의 나 자신에게 무언가 남겨놓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이렇게 남겨놓는 말은 거짓말은 아닐 테니 말이다.


재수할 때의 형이, 그리고 그 뒤로 내가 계속 되새기고 있는 말. 나중에도 기억할지 모르겠으니 여기에 기록을 해둘 생각이다.

진짜 내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되게 단순한 말이지만, 중요한 말이다. 누구든 내 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엄연히 따지고 보면 나의 편이 되어주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남이다. 설령 친구나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보면 내 인생의 끝까지 함께 해주는 이들은 아니다. 마음 아프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그들도 역시 친밀할 뿐, 남의 범주에 들어간다. 즉, 내가 나를 응원해주는 법을 알지 못하면 나는 어디에도 기댈 곳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예전부터 간직하고 있던 말을 굳이 꺼내 들어 다시금 새기려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요즘 따라서 유난히 비어있는 기분이 들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있지만, 조금은 나 자신을 응원해줄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의존할 사람도 딱히 없는데, 나 마저 나를 저버린다면 그건 좀 쓸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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