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6월 05일의 기록
요즘 들어서 부단하게 느낀 것이 있다. 생각지도 않은 때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일들이 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일들은 대개 허공에서 생겨난 새로운 일인 경우보다, 원래 있었던 이전의 일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 경우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옛날 일들을 떠올리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해서 그렇다.
옛날이라고 해봐야, 그리 오래된 일들도 아니다. 물론 사전에서 '옛날'이라는 단어를 찾았을 때 두 번째 뜻에 "이미 지나간 어떤 날"이라는 뜻이 있으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튼 이 "옛날" 일들은 기껏 해봐야 2년에서 3년 정도 된 일들인 것 같다. 모두 20대에 접어들면서 생긴 일들이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부터는 참 새로운 일이 많았다. 보통은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라는 큰 틀을 벗어나는 일들을 하지 못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20대에 접어들고 나서는 뭐든 새로웠던 것 같다.
물론, 20살에 재수를 하고 나서 기껏 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21살에는 코로나19 유행과 함께 대학 새내기 생활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영부영 한 학년을 마치고 난 22살의 4월에 입대하고 23살이 된 올해 말에 전역이 예정되어있다. 학교를 본격적으로 다닌다고 생각하면 내년부터 2학년으로 복학하게 되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남들이 "청춘"이라고 하며 즐기라고 하는 시기에서 4년 정도를 흐지부지 보낸 셈이다. 그래도 그 사이의 몇 년은 분명 신선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는 성인이 되면 조금은 다를 줄 알았다.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던 해를 그렇게 우울하게 마무리하지 않았더라면 어른이 되는 것에 조금은 더 환상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깨닫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이를 먹는 게 큰 일은 아니라는 것과, 나이는 나 스스로를 위한 지표가 아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 필요한 지표라는 것을 말이다. 생각보다 별거 없던 스무 살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소하지만 '별 거'를 만들어 내려는 욕심에 괜히 스스로 10대의 철없던 나 자신보다는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옭아맨 부분도 있었지만, 즐거웠던 일들은 크고 작게 늘 있었다. 군대에 들어오기 1 년 정도 전부터 꾸준히 쓰던 일기장과 독후감들을 보면 엄청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지만, 문득 그냥 미소가 지어지는 글이 적힌 날들도 있다. '내가 이런 생각도 했었다고?'라고 할 정도로 놀랄 때도 있었고, 아는 것도 많지 않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이 없지만 주어진 삶 안에서 꽤 치열하게 살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쓰여 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군대에 들어오기 직전, 고민이 엄청 많았다. 20대 때 홀로서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진로와 취직과 관련된 누구나 다 하게 되는 그런 고민들이다. 아마 시간이 어렸을 때에 비해서 많이 흘렀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이런 누가나 다 하는 고민들 말고도, 대인 관계로도 고민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새로운 환경은 곧 새로운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이고 그룹이 만들어지지만 20대가 넘어가게 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게 되다 보니 그런 고충이 심해진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몸이 힘들었던 군생활 동안에는 이런 고민들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었다. 역시 몸이 피곤해져서 그런 것일까. 몸이 피곤하니까 걱정이라는 것을 할 겨를이 없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되어서는 전역이 아주 먼 일이 아니게 된 만큼, 다시금 그런 걱정들이 생기는 중이다. 몸이 편해져서 그런 것일까 생각하지만 여전히 군생활이 고되다고 느껴지는 것을 보면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해봐야 그 답이 생각날 것 같지는 않지만.
옛날에는 분명 나 스스로 생각해도 "행복했다"라고 할 만한 시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일들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당장 몇 년 전만 해도, '사는 맛'이 느껴지는 행복한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그런 것은 남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드넓은 사막에서 헤매는 느낌만이 남게 됐다.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 내가 우울증에 걸린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좋아할 수 있는 것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다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표현 이외에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조차도 모르겠다.
무작정 모르겠다는 소리만 내뱉는 것은 무책임해 보여서 내가 썩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 모를 때는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무언가 좇는 것이 있고 괜히 뭐라도 열심히 해보려고 했던 그 "옛날" 일들이 자꾸 떠오르게 되는 것 같다. 잘 모르더라도 무작정 앞만 보고 나아가도 괜찮았던 그런 "옛날". 조금은 헤매도 괜찮았던 그런 "옛날". 옛날을 통해 오늘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어느 시점의 옛날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