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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의 이기심을 탓하며

(잘 보고 앉아야지~)

by 구슬 옥

8월 18일

프랑스 바욘의 민박집에서 열린 창가로 들어오는 시원하고 맑은 공기에 가뿐하게 일어났다. 새벽까지 울어대던 어린 남자아이의 울음소리도 이젠 잦아들어 들리지 않는다. 새벽에 우는 아이를 아빠가 데리고 나가는 소리를 설핏 잠결에 들었던듯하다.


송곳니 나는 게 아파서 우는데 병원에서도 별다른 처방이 없어, 민박하고 있는 우리에게 미안해서 데리고 나가 드라이브를 하고 왔다고 한다. 차를 타면 울지 않고 잠을 잔다고. 우리도 저렇게 애타하며 아이를 키울 때가 있었지만 젊은 부부가 애쓰는 걸 보니 안쓰러웠다.


어젯밤에 도착했을 때는 괜히 민박을 했나 보다 잠깐 생각했었다. 샤워실도 불편하고 아이 울음소리에 잠도 뒤척이게 해서 이런저런 핑계로 호텔 예약을 안 한 게 후회된다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잠시 생각하니 긴 비행을 마치고 바욘에서 한인민박에 들어 편안한 언어로 얘기하며 곳곳에서 살고 있는 용감하고 아름다운 한국인들의 가정을(여기는 남편이 프랑스인) 볼 수 있게 하시고 또 그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기도하게 하신 성령의 인도하심이 감사하다.


나의 부족한 점-이기적인 생각이 많은 점-을 오늘 또 깨달으며 편한 휴식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렸다. 아침 기도와 오늘의 복음 말씀까지 읽고 그리고 민박집 써니 하우스 가정을 위해 기도했다. 아이들도 건강하게 키우고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민박집에서 준비해 준 빵과 우유 주스 등으로 아침을 먹고 다시 바욘 시내에서 루르드행 기차를 타고 드디어 루르드 성지에 간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루르드 성지에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남편 덕분에 꿈이 이루어진다. 늘 꿈을 꾸고 기다리면 어느덧 이루어주심을 새삼 깨닫는다.


한국에서 큰아들이 바르셀로나에 차량 테러가 일어나 사망자들과 중상자들이 많다고 대도시에서 조심하라고, 천천히 잘 걸으라는 안부의 카톡을 받았다.


며느리 또한 매일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니 더욱 고맙다. 우리도 며느리가 토리(태명)를 순산하기를, 임신기간 내내 건강하기를 기도했다.

부모와 자식이 이렇게 서로의 안부를 염려해 주는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에 감사하다.


바욘에서 SNCF 타고 루르드 역까지 신나게 잘 왔다. 물론 기차를 타면서도 에피소드는 있었다. 첫째는 루르드행 기차 인지 꼼꼼한 남편은 몇 번을 확인했고 두 번째는 티켓이 2 class라는 것을 알면서 어느 칸이 1,2 class인지 알 수가 없어서 지난번 사하군에서 탔던 기차를 생각하고 비슷한 칸에 타고 여유 있게 출발했다는 것이다.


한참을 지나 검표원이 지나가면서 좌석을 확인하다가 우리 티켓을 보더니 2 class칸으로 좌석을 옮기라고 했다. 어느 칸으로 가야 2 class 좌석인지 알 수 없는 우리는 1 class칸이라고 생각했던, 문이 닫혀 있어 침대칸으로 착각하여 문도 열어보지 않고 지나쳐간 곳의 문을 여니 그곳은 침대칸이 아니라 긴 의자에 여럿이 마주 보고 앉는 자리였다.


할 수 없이 그곳이 2 class 칸인 줄 알고 들어가 앉았었는데 내릴 때 보니 다음칸에 1 class칸처럼 두 사람씩 앉을 수 있는 곳도 2 class였다. 그러니까 문 달린 여럿이 앉는 칸은 3 class칸이었던 거였다.


불어는 모르지만 눈치로 방송에 루르드가 들어가니 내릴 준비하고 잘 내렸다. 때맞춰 오는 비를 맞으며 구글 지도로 숙소를 찾다가 지도 보는 게 약해 조금 헤맸지만 금방 찾았다.


루르드 성지 근방에 그래도 덜 번화한 곳의 큰 호텔이다. 미리 예약이 되어서 2박에 트윈룸 104.4유로 카드 결제했다. 가격이 조금 싸서 마실물이 없고 아침이 없다. 그래도 앞으로 갈 알베르게에 비하면 황공할 뿐이다.

가방을 숙소에 놓고 서둘러 루르드 성지에 갔다. 성지 입구의 안내소에서 지도를 받고, 까미노 순례자 여권도 3유로씩 내고 만들었다.


2년 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2박 3일 여행하고, 몽파르나스 역에서 테제베 타고 바욘에 가서, 다시 버스(기차가 휴업 중이라) 타고 생장으로 들어가 순례자 여권을 만들어 프랑스길 까미노를 걷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 번째 걷는 거라 마음도 시간도 여유 있어 루르드 성지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프랑스길 까미노-생장 피에르드 포트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꼼뽀스텔라까지 걷는 800km 구간)

루르드 성지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동굴 성당으로 올라갔다. 장식이 거의 없이 소박하고 아늑하다. 한쪽에 벨라뎃다 성녀의 사진이 있고 그 밑에 성모님을 만나는 어린 벨라뎃다를 그린 그림이 있고 초 봉헌 대가 있었다. 나는 스페인의 차량 테러 때문에 우리의 순례길을 걱정하는 큰아들의 카톡을 생각하며 촛불을 켜고 벨라뎃다 성녀 앞에서 순례를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청했다.


몇몇 순례자들이 조용히 기도하며 앉아 있는 중앙 제대 앞에서도 세계평화와 한반도의 평화, 내전을 겪는 나라들을 위해 기도했다.

*동굴 성당: 어린 벨라뎃다가 성모님을 만난 동굴 위에 맨 처음 지은 성당


성당을 나와 계단으로 이어진 2층 다리로 올라가니 흰 비둘기 한 마리가 돌 장식 위에 앉아있다. 누군가 가만히 손을 부리 쪽으로 가져가니 신기하게도 손에 살며시 부리를 대준다. 성지에서 지내다 보니 사람들에게 두려움 없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비가 내려서 가져온 우비로 갈아입고, 성당을 천천히 내려가는데 우산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마사 비엘 동굴 안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가 잰걸음으로 가보니 마사 비엘 동굴 앞에서는 마침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사 비엘 동굴: 어린 벨라뎃다가 성모님을 만난 장소


비 오는 중인데도 우산 쓰고 우비 입고 많은 사람들이 참례했는데 우리가 많이 늦었는지 미사가 조금 후에 끝나서 아쉬웠다.

성모님이 어린 벨라뎃다에게 여러 차례 발현하셨던 장소 '마사 비엘 동굴'의 야외 제대와 봉헌 촛대

성지에서 나와 주택가에 있는 벨라뎃다 성녀의 생가를 방문하고 호텔로 돌아가면서 내일은 아침 일찍 성지에 올라 미사 참례하고, 십자가의 길 기도하고, 로사리오 대성당 내부 등 다시 둘러보고, 근처의 갈멜 수녀원에도 가보고 루르드 시내도 돌아볼 생각이다.


그런데 해외 어디를 가도 만나는 한국인을 볼 수가 없다. 여기 오면 한국인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후에 성당 앞에서 만난 3명뿐이다. 그분들은 내일 생장으로 들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건강하게 잘 순례하기를, 지향이 주님께 닫기를 마음으로 기원했다.

벨라뎃다 성녀의 생가 내부-성녀가 쓰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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